남강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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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경상남도 진주시 내동면과 판문동에 걸쳐있는 남강의 다목적댐. 건설의 역사가 의외로 길다. 일제강점기인 1939년 첫 삽을 떴으나 이후 중단되었고, 1949년 재착공했지만 전쟁의 여파와 재정 부족으로 또 중단됐다. 이어,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사업으로 1962년 제3차 착공에 들어가 1970년 7월 완공했다. 1989년 9월 대규모 보강 공사에 착수하여 1999년 12월 현재의 모습으로 준공되었다.
댐의 높이는 21m, 제방길이는 975m, 총 가용저수량은 1억 8천만톤이다. 남강 유역 일대의 홍수 피해를 줄이고, 남강 하류의 농경지에 연간 6천만㎥의 관개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또한, 진주시와 사천시의 상수도를 공급하고 1만 2600㎾의 전력도 공급한다.
댐의 높이가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지만 효용은 어마어마한데, 당장 진주시, 함안군, 의령군 일대를 괴롭히던 홍수 문제가 완전히 사라졌다.[1] 또한 남강 인근의 늪지대가 개간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가만 이건 좋은 게 아닐지도.. 남강댐 건설 이전에는 남강에서 역류한 홍수가 수km 밖에 있는 의령군 의령읍과 함안군 가야읍을 뛰어넘어 함안면까지 솟구쳐올라왔을 정도. 지금도 큰 태풍이 오면 가야읍 검암리 인근까지는 수위가 차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
평상시에 댐을 횡단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봄철 행사가 있을 때 한시적으로 개방한다.
남쪽의 진주시 내동면 삼계리에서는 남해로 흘러나가는 가화천(가화강)[2]이 발원하는데, 원래 남강과는 산줄기로 분리돼 수계가 달랐으나 남강댐을 건설하면서 산줄기를 절개해 두 수계를 연결시키고 그쪽에도 수문을 설치해 놓았다.운하 남강이 낙동강의 지류이므로, 생각해 보면 여기서부터 부산의 낙동강하구둑까지 경남 중남부 전역[3]이 하나의 거대한 섬이 되는 셈이다.(!) 운하를 파서 만들어진 김포섬이나 안면도와 비슷하게 된 경우. 이 가화천은 진양호의 수위를 조절하는 방수로로 이용하고 있다.
댐의 높이는 21m, 제방길이는 975m, 총 가용저수량은 1억 8천만톤이다. 남강 유역 일대의 홍수 피해를 줄이고, 남강 하류의 농경지에 연간 6천만㎥의 관개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또한, 진주시와 사천시의 상수도를 공급하고 1만 2600㎾의 전력도 공급한다.
댐의 높이가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지만 효용은 어마어마한데, 당장 진주시, 함안군, 의령군 일대를 괴롭히던 홍수 문제가 완전히 사라졌다.[1] 또한 남강 인근의 늪지대가 개간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평상시에 댐을 횡단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봄철 행사가 있을 때 한시적으로 개방한다.
남쪽의 진주시 내동면 삼계리에서는 남해로 흘러나가는 가화천(가화강)[2]이 발원하는데, 원래 남강과는 산줄기로 분리돼 수계가 달랐으나 남강댐을 건설하면서 산줄기를 절개해 두 수계를 연결시키고 그쪽에도 수문을 설치해 놓았다.
2. 교통 [편집]
3. 관광 [편집]
[1] 댐에 물을 가둬놓아 함안, 의령 쪽으로 홍수가 밀려가는 것을 막을 수 있고, 또한 후술할 가화천 방수로 덕분에 진양호가 넘치더라도 함안, 의령을 거치지 않고 바로 남해로 방류시킬 수 있기 때문.[2] 사천시 곤양면 가화리에서 따왔다.[3] 경상남도 김해시, 사천시(곤명면, 곤양면, 서포면 제외), 진주시(문산읍, 금곡면, 금산면, 내동면, 사봉면, 이반성면, 일반성면, 정촌면, 지수면, 진성면, 가호동, 천전동, 충무공동), 창원시, 통영시, 고성군, 함안군,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덕도동, 가락동, 녹산동[4] 위 사진 상에 보이는 넓은 공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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