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한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1. 개요 [편집]
2. 상세 [편집]
자신의 딸 둘을 모용해(慕容楷)와 혜민제에게 시집보냈으며, 형 난제(蘭堤), 동생 난가난(蘭加難)과 함께 황실의 외척으로 성무제에게 신임받던 평범한 외척이었다. 용성에 주둔하던 모용회(慕容會)의 반란[2]을 물리치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러다 398년 혜민제는 중신들이 반대하는데도 불구하고, 북위에게 빼앗긴 영토를 되찾기 위해 남은 세력을 이끌고 남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을련(乙連)에 이르렀을 때 단속골(段速骨)이란 자가 반란을 일으켜 다시 용성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런데 난한은 사실 단속골과 한패였고, 5월에 용성으로 돌아온 난한은 혜민제와 그의 태자인 모용책(慕容策)을 시해하고 마침내 자신을 창려왕이라 칭한 후 제위에 오른다. 그의 아들인 난목(蘭穆)은 아버지가 황제가 되자 잠시동안 태자로 책봉되었다.
어째서인지 난한은 자신의 사위인 모용성(소무제)만큼은 죽이지 않고 남겨놓았는데, 모용성은 황실 복고를 위해 난한과 그 형제들 사이를 이간질하여 갈라놓는다. 그 후 동년 7월 모용성이 정변을 일으키면서 난한은 일족과 함께 처참히 목숨을 잃었고, 이후 모용성이 제위에 오르게 된다.
그러다 398년 혜민제는 중신들이 반대하는데도 불구하고, 북위에게 빼앗긴 영토를 되찾기 위해 남은 세력을 이끌고 남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을련(乙連)에 이르렀을 때 단속골(段速骨)이란 자가 반란을 일으켜 다시 용성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런데 난한은 사실 단속골과 한패였고, 5월에 용성으로 돌아온 난한은 혜민제와 그의 태자인 모용책(慕容策)을 시해하고 마침내 자신을 창려왕이라 칭한 후 제위에 오른다. 그의 아들인 난목(蘭穆)은 아버지가 황제가 되자 잠시동안 태자로 책봉되었다.
어째서인지 난한은 자신의 사위인 모용성(소무제)만큼은 죽이지 않고 남겨놓았는데, 모용성은 황실 복고를 위해 난한과 그 형제들 사이를 이간질하여 갈라놓는다. 그 후 동년 7월 모용성이 정변을 일으키면서 난한은 일족과 함께 처참히 목숨을 잃었고, 이후 모용성이 제위에 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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