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성동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나성동 羅城洞 | Naseong-dong | |
광역자치단체 | |
마을이름 | 나릿재마을 |
행정표준코드 | 3611010700 |
주민센터 홈페이지 | |
1. 개요 [편집]
2. 역사 [편집]
동 이름은 이 지역에 있었던 토성(土城)인 나성(羅城)에서 유래되었다.
삼국시대 당시 삼국의 경계 근처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중요한 곳이었으며 이때문에 토성인 나성이 신라에 의해 건설되기도 하였다.
삼국시대 당시 삼국의 경계 근처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중요한 곳이었으며 이때문에 토성인 나성이 신라에 의해 건설되기도 하였다.
2.1. 공주-대평리 전투 [편집]
6.25 전쟁 당시 7월 13일에서 7월 16일까지 치러진 국군과 미군의 지연작전인 공주-대평리 전투의 주무대였다. 당시 천안 전투와 전의 전투에서 연달아 큰 타격을 입은 미군 24사단 21연대가 조치원을 거쳐 대평리까지 후퇴해 금강 방어선을 형성하였다.
이때 나성리를 지나는 1번 국도를 통해 인민군 전차와 보병이 돌파하여 금강 도하를 시도했지만 미 21연대의 뒤를 이어 대평리를 방어하던 미 19연대가 화력을 집중해 방어하였고, 이때 수많은 나성리의 초가들이 불타 쑥대밭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필사적인 방어에 성공하는듯 싶었으나 포병간의 소통 실수로 밤중에 미군의 시야를 밝혀주던 조명탄이 20분 정도 꺼지는 바람에 그 사이에 인민군이 금강을 도하하였고, 19연대는 발산리를 거쳐 대전으로 후퇴하고 금강방어선이 뚫리면서 막을 내리게 된다.
이때 나성리를 지나는 1번 국도를 통해 인민군 전차와 보병이 돌파하여 금강 도하를 시도했지만 미 21연대의 뒤를 이어 대평리를 방어하던 미 19연대가 화력을 집중해 방어하였고, 이때 수많은 나성리의 초가들이 불타 쑥대밭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필사적인 방어에 성공하는듯 싶었으나 포병간의 소통 실수로 밤중에 미군의 시야를 밝혀주던 조명탄이 20분 정도 꺼지는 바람에 그 사이에 인민군이 금강을 도하하였고, 19연대는 발산리를 거쳐 대전으로 후퇴하고 금강방어선이 뚫리면서 막을 내리게 된다.
3. 주요 시설 [편집]
3.1. 기관 [편집]
3.2. 상업시설 [편집]
4. 교통 [편집]
4.1. 관내 BRT 정류장 [편집]
5. 교육 [편집]
- 초등학교
- 나성초등학교
- 중학교
- 나성중학교
6. 공동주택 [편집]
공동주택/목록/세종특별자치시 참조바람
- 나릿재마을 1, 2단지 리더스포레[2]
- 나릿재마을 3단지 제일 풍경채 위너스카이
- 나릿재마을 4단지 부원 트리쉐이드 리젠시
- 나릿재마을 5, 6단지 한신 더휴 리저브
7. 장래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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