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조선)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金希哲
(1519~1592)
본관은 김해(金海). 봉군호는 해녕부원군(海寧府院君). 김종수(金從壽)의 아들이다. 1583년(선조 16년)에 사도시 첨정(司䆃寺僉正)이 되었으나 사헌부의 탄핵으로 면직되었다. 그 뒤 무과에 급제한 뒤 사포서별제(司圃署別提)에 올랐다. 딸인 공빈 김씨가 선조의 후궁(後宮: 恭嬪)이 되어 임해군·광해군 두 왕자를 낳아 왕의 총애를 받았다. 즉, 광해군과 임해군의 외할아버지인 셈. 또 그의 12대손이 바로 김종필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의병장이 되어 왜군과 맞서 싸웠으나 패배하고 전사했다. 사후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로 추증되었으며, 광해군이 즉위한 뒤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 해령부원군(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 領議政 海寧府院君)에 추봉되었고, 그의 3대 조상도 추증되었다.
아들로 김예직(金禮直)이 있다.
왕의 여자에서는 권성덕이 연기했다.
(1519~1592)
본관은 김해(金海). 봉군호는 해녕부원군(海寧府院君). 김종수(金從壽)의 아들이다. 1583년(선조 16년)에 사도시 첨정(司䆃寺僉正)이 되었으나 사헌부의 탄핵으로 면직되었다. 그 뒤 무과에 급제한 뒤 사포서별제(司圃署別提)에 올랐다. 딸인 공빈 김씨가 선조의 후궁(後宮: 恭嬪)이 되어 임해군·광해군 두 왕자를 낳아 왕의 총애를 받았다. 즉, 광해군과 임해군의 외할아버지인 셈. 또 그의 12대손이 바로 김종필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의병장이 되어 왜군과 맞서 싸웠으나 패배하고 전사했다. 사후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로 추증되었으며, 광해군이 즉위한 뒤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 해령부원군(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 領議政 海寧府院君)에 추봉되었고, 그의 3대 조상도 추증되었다.
아들로 김예직(金禮直)이 있다.
왕의 여자에서는 권성덕이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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