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혁규(정치인)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29-31대 경상남도지사 김혁규 | |
이름 | 김혁규(金爀珪) |
본관 | |
출생일 | |
출생지 | |
가족 | 아내 이숙자, 딸 김성신[1] |
종교 | |
학력 | |
소속 정당 | |
경력 | |
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1939년 경상남도 합천군 초계면 아막리에서 5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고모의 도움을 받으며 유년기를 보냈다. 본래 김해 한얼고등학교에 진학했으나 재단비리에 항거하는 학생시위를 주동하다가 퇴학당했으며, 이후 부산동성고등학교에 편입하여 졸업했고, 이어 부산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하여 졸업하였다.
대학 졸업 후 공무원시험에 합격하여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등에서 관료로 일하다가 사표를 제출하고 미국에서 가발 회사를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그리고 뉴욕 한인경제인협회 회장, 뉴욕 한인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그 때 김영삼과 인연을 맺었다.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김영삼 후보를 지지하며 사조직인 나라사랑실천운동본부 총괄기획실 실장을 역임하였다. 1993년 김영삼 정권이 출범하자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사정제1비서관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말부터 1995년 초까지 관선 경상남도지사를 역임하였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경상남도지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경상남도지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경상남도지사에 출마하여 전 남해군수인 새천년민주당 김두관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2003년 경상남도지사직을 사임하고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열린우리당에 입당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총리 지명자로 거론됐으나, "철새를 총리로 임명하려 한다"는 한나라당의 반대에 밀려 좌초되었고, 총리직은 이해찬에게 넘어갔다. 그리고 2005년 프로배구 주관 협회인 한국배구연맹(KOVO) 초대 총재를 역임하기도 했다.
2006년 2월 18일에는 열린우리당 임시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으로 선출되었다. 2007년, 열린우리당이 대통합민주신당과의 합당을 결의할 때 김원웅, 허경영[2] 등과 함께 '열린우리당 지킴이'를 자처하며 끝까지 합당을 반대하였다. 관련기사
이후 자유선진당이 창당될 때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중도에 탈당하며 선진당을 떠났고, 정계에서 은퇴했다.
대학 졸업 후 공무원시험에 합격하여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등에서 관료로 일하다가 사표를 제출하고 미국에서 가발 회사를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그리고 뉴욕 한인경제인협회 회장, 뉴욕 한인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그 때 김영삼과 인연을 맺었다.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김영삼 후보를 지지하며 사조직인 나라사랑실천운동본부 총괄기획실 실장을 역임하였다. 1993년 김영삼 정권이 출범하자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사정제1비서관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말부터 1995년 초까지 관선 경상남도지사를 역임하였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경상남도지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경상남도지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경상남도지사에 출마하여 전 남해군수인 새천년민주당 김두관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2003년 경상남도지사직을 사임하고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열린우리당에 입당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총리 지명자로 거론됐으나, "철새를 총리로 임명하려 한다"는 한나라당의 반대에 밀려 좌초되었고, 총리직은 이해찬에게 넘어갔다. 그리고 2005년 프로배구 주관 협회인 한국배구연맹(KOVO) 초대 총재를 역임하기도 했다.
2006년 2월 18일에는 열린우리당 임시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으로 선출되었다. 2007년, 열린우리당이 대통합민주신당과의 합당을 결의할 때 김원웅, 허경영[2] 등과 함께 '열린우리당 지킴이'를 자처하며 끝까지 합당을 반대하였다. 관련기사
이후 자유선진당이 창당될 때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중도에 탈당하며 선진당을 떠났고, 정계에서 은퇴했다.
3. 선거 이력 [편집]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 | 선거종류 | 소속정당 | 득표수(득표율) | 당선여부 | 비고 |
1995 | 1,177,397 (63.84%) | 당선 (1위) | 초선 | ||
1998 |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남도지사) | 939,358 (74.64%) | 당선 (1위) | 재선 | |
2002 |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남도지사) | 920,706 (74.50%) | 당선 (1위) | 3선[3] | |
2004 |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 8,145,824 (38.26%) | 당선(4번) | 초선 |
4. 둘러 보기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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