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책역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김책역 | ||
다국어 표기 | ||
Kimch'aek | ||
金策 | ||
金策 | ||
주소 | ||
역 등급 | ||
(청진철도총국) | ||
운영기관 | ||
개업일 | ||
1924년 10월 11일 | ||
철도거리표 | ||
평라선 김 책 | ||
1. 개요 [편집]
2. 상세 [편집]
원래는 '성진시(城津)'와 '학성군(鶴城)'이었다.[1] 그런데 6.25 전쟁에서 김일성의 심복인 김책이 평양에 남겠다고 하는 걸 끌고 갔다가 졸지에 연탄가스로 죽는 바람에, 이를 기리고자 성진시와 학성군의 이름을 각각 김책시와 김책군으로 바꾸고 이를 1952년 군면리 대폐합 당시에 합치면서 현재의 김책시가 생겨난 것. 1순위는 김일성의 아버지와 아내, 작은아버지 이름을 딴 김형직군(후창)과 김정숙군(신파), 김형권군(풍산). 여담으로 북한 유일의 공업대학도 바로 이 김책의 이름을 따서 김책공업대학이라고 지었으며, 1994년 김일성이 죽고 그가 애지중지하던 금고를 열어보자 그와 김책이 찍은 사진이 있었다고 하니 그의 이름을 딴 김책시를 공업의 중심지로 육성하려고 애를 쓴 것도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실제로 김책시 중심부의 크기는 대략 7㎢이니(원래 광복 당시 북한의 11시 89군 중 1개의 시였으니까 규모가 좀 됐다고는 하지만) 나름대로 잘 성장한 셈이다. 아, 물론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여담으로 북한 행정구역상 김책시는 22동 22리를 두고 있다.이 분이나 이 분이 떠오르면 지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김책도 2인자였으니까 이거슨 숙명?
딱히 분기노선이 없는 관계로 승강장은 1면에 불과하지만 이 역에 소속되어 있는 선로는 12개나 된다. 3km나 떨어진 공장에까지 인입선이 이어져 있는 정도이고 또 죄다 전철화되어 있으니 얼마나 구석구석까지 인입선이 나 있고 얼마나 김책역이 규모가 크며 얼마나 북한에서 이 김책시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해안까지의 거리는 600m가 조금 안 되는데, 가까운 쪽의 바다는 모두 항만이 건설되어 있다. 화암(花岩)이라고 해서 볼 만한 지역만 간신히 남겨두고 있다.
평양역 기점 544.3km.
여담으로 북한 행정구역상 김책시는 22동 22리를 두고 있다.
딱히 분기노선이 없는 관계로 승강장은 1면에 불과하지만 이 역에 소속되어 있는 선로는 12개나 된다. 3km나 떨어진 공장에까지 인입선이 이어져 있는 정도이고 또 죄다 전철화되어 있으니 얼마나 구석구석까지 인입선이 나 있고 얼마나 김책역이 규모가 크며 얼마나 북한에서 이 김책시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해안까지의 거리는 600m가 조금 안 되는데, 가까운 쪽의 바다는 모두 항만이 건설되어 있다. 화암(花岩)이라고 해서 볼 만한 지역만 간신히 남겨두고 있다.
평양역 기점 544.3km.
[1] 원래 같은 성진군이었다가, 1943년 성진읍이 부(시)로 승격돼 분리되고 남은 성진군은 학성군으로 개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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