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만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이름 | 김윤만(金潤萬, Kim Yoonman) |
국적 | |
출생 | |
학력 | |
종목 | |
주종목 | 500m, 1000m |
1. 소개 [편집]
2. 선수 경력 [편집]
5살 때부터 스피드 스케이팅을 시작했으며, 초등학교 1학년 2학기에 경의초등학교로 전학을 가고 나서 빙상부에서 활동하면서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88년 고등학교 1학년부터 국가대표로 뽑혔으며,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500m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조금씩 주목받다가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딸 당시에 19세였다. 당시 1위보다 불과 0.01초 늦어 대한민국 동계올림픽 도전 역사상 최초의 금메달리스트가 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쳤다.[2] 다음 날이 쇼트트랙 경기라 큰 주목을 못해서 그랬는지 국내 방송사가 현장에 없었기 때문에 갑자기 연락을 받고 달려온 기자 분이 일본 방송국 기자에게 카메라를 빌려서 인터뷰를 진행했다는 점이다. 당시 그는 메달에 대해서 큰 기대를 안하고 편한 마음으로 경기를 치뤘는데, 2위라서 놀랐다는 것이다.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때는 정신적으로 힘들었고, 메달권에서 멀어진 상태였다. 500m에서 레이스 파트너가 부정 출발 등 실수를 많이 했고 1000m에서도 파트너가 중간에 넘어지는 등[3] 운도 안 좋아진 것도 한몫했다.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는데, 이때 25세였다.
1988년 고등학교 1학년부터 국가대표로 뽑혔으며,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500m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조금씩 주목받다가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딸 당시에 19세였다. 당시 1위보다 불과 0.01초 늦어 대한민국 동계올림픽 도전 역사상 최초의 금메달리스트가 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쳤다.[2] 다음 날이 쇼트트랙 경기라 큰 주목을 못해서 그랬는지 국내 방송사가 현장에 없었기 때문에 갑자기 연락을 받고 달려온 기자 분이 일본 방송국 기자에게 카메라를 빌려서 인터뷰를 진행했다는 점이다. 당시 그는 메달에 대해서 큰 기대를 안하고 편한 마음으로 경기를 치뤘는데, 2위라서 놀랐다는 것이다.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때는 정신적으로 힘들었고, 메달권에서 멀어진 상태였다. 500m에서 레이스 파트너가 부정 출발 등 실수를 많이 했고 1000m에서도 파트너가 중간에 넘어지는 등[3] 운도 안 좋아진 것도 한몫했다.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는데, 이때 25세였다.
3. 은퇴 이후 [편집]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지도자로 참여하였지만, 지도자 생활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유학했다. 2008년부터 대한체육회에서 행정가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조직위 파견 근무와 빙상 경기장 업무를 담당했다. 또한 개막식에서는 오륜기를 들고 입장하였다.
4. 수상 기록 [편집]
올림픽 | ||
은메달 | 1000m | |
세계선수권 | ||
금메달 | 1995 밀워키 | 스프린트 |
아시안 게임 | ||
은메달 | 1000m | |
동메달 | 500m | |
주니어 세계선수권 | ||
금메달 | 1992 바르샤바 | 500m |
[1] 그만큼 스포츠에서 1/100초(0.01초) 차이가 굉장히 무섭다는 빼도박도 못할 증거다. 만약 김윤만이 금메달을 땄다면 당연히 2021년 현재까지 그의 이름이 대한민국 국민들 사이에 널리 회자되었겠지만, 1위보다 불과 0.01초 늦게 들어온 죄(?) 때문에 대한민국의 대다수 국민들이 그를 대한민국 동계올림픽 최초의 메달리스트로 기억해 주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대다수 국민들에게 각인되어 있는 대한민국 동계올림픽 최초의 메달리스트는 쇼트트랙의 김기훈일 것이다. 그리고 김윤만만으로도 모자라 대한민국은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김윤만처럼 0.01초 차로 금메달을 놓친 선수를 한 명 더 보유하고 있고,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올림픽 마라톤 역사상 가장 간발의 차로 금메발을 놓친 선수까지 보유하고 있는 비운의 나라이다.[2] 이때의 아쉬움은 26년 후 남자 500m에서 차민규에 의해 되풀이되었다.[3] 공교롭게도 두번 모두 파트너는 개최국 노르웨이 선수였고, 24년 후 차민규의 금메달을 0.01초차로 빼앗아간 선수도 노르웨이 선수였다. 이래저래 대한민국 스피드스케이팅은 쇼트트랙에서의 중국처럼 노르웨이와 악연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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