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희(축구선수)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분류
이름 | 김용희 (金容熙 / Kim Yong-Hee) |
생년월일 | |
국적 | |
출신지 | |
신장 | 175cm |
포지션 | |
유스팀 | 중앙대학교 (1997~2000) |
소속팀 | |
1. 소개 [편집]
2. 선수 경력 [편집]
2.1. 아마추어 시절 [편집]
2.2. 프로 경력 [편집]
2001년 드래프트에서 2순위로 성남 일화 천마에서 데뷔했으며, 당초에는 별다른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던 무명 선수였으나 데뷔 시즌에 가이모토 코지로가 부상을 입자, 그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우측 수비수로 낙점받았다. 놀라운 활약을 펼치면서 단번에 주전을 꿰차며 주목을 받았다. 덕분에 신인 시절 거의 전 경기에 출장하면서 K리그 시즌 베스트 11에도 선정되는 등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이러한 활약으로 국가대표팀 상비군에 발탁됨과 동시에 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었고, 신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1] 이후 2003년까지 성남 일화에서 뛰며 성남의 3회 연속 K리그 우승에 한 몫을 담당했을 정도. 그야말로 거칠게 없었던 상승세를 타며 활약했다.
하지만 2003년, 이기형, 박충균 등이 성남에 영입되면서 김용희는 주전 자리에서 밀려나 거의 출장하지 못하며 위기를 못하게 되고, 마침 윙백을 찾던 이안 포터필드에 의하여 부산 아이파크로 이적하게 된다. 당시 부산이 김용희 영입에 지불한 금액은 약 3억. 연봉은 1억 3천만원에 3년 계약이었다고 한다. 김용희를 4-4-2의 우측 윙백[2]으로 쓰려고 영입했다.
2004년 부산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줬지만, 당시 이안 포터필드의 극단적인 수비전술은 김용희 선수의 오버래핑 능력을 활용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결국 김용희는 그대로 광주 상무로 군입대를 하게 되고, 광주 시절에는 쏠쏠한 활약을 펼치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2006년에는 올스타전에 선발될 정도로 리그 내에서 수준급 윙백으로 인정받았다.
제대 후인 2007년 부산으로 다시 복귀하였으나, 김용희 선수는 광주 시절 기량이 온데간데 없었고 여기에 2007년 이안 포터필드의 급작스런 사임과 박성화의 야반도주 사건등 부산 선수단 분위기가 막장으로 치달았다. 김용희도 코칭 스태프와의 마찰설이 돌면서 활약을 못 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
결국 2008년 마침 측면 수비수를 찾고있던 전북 현대 모터스에 1:2트레이드 형식으로 이적하게 된다. 트레이드 된 선수는 최광희, 최철우이다.
하지만 전북에서도 기대에 걸맞는 경기력을 선보이지 못했고 결국 1년만에 팀에서 방출되어 강릉시청 축구단에 입단하게 되었다. 이후에는 주전으로 좋은 활약을 선보이다 시즌 도중 인천 코레일으로 팀을 옮겼고, 시존 종료 이후에는 인도네시아 무대로 진출해 페르시바 발릭파판, 스리위자야 FC, 아레마 말랑 등의 팀에서 활약하였다.
하지만 2003년, 이기형, 박충균 등이 성남에 영입되면서 김용희는 주전 자리에서 밀려나 거의 출장하지 못하며 위기를 못하게 되고, 마침 윙백을 찾던 이안 포터필드에 의하여 부산 아이파크로 이적하게 된다. 당시 부산이 김용희 영입에 지불한 금액은 약 3억. 연봉은 1억 3천만원에 3년 계약이었다고 한다. 김용희를 4-4-2의 우측 윙백[2]으로 쓰려고 영입했다.
2004년 부산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줬지만, 당시 이안 포터필드의 극단적인 수비전술은 김용희 선수의 오버래핑 능력을 활용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결국 김용희는 그대로 광주 상무로 군입대를 하게 되고, 광주 시절에는 쏠쏠한 활약을 펼치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2006년에는 올스타전에 선발될 정도로 리그 내에서 수준급 윙백으로 인정받았다.
제대 후인 2007년 부산으로 다시 복귀하였으나, 김용희 선수는 광주 시절 기량이 온데간데 없었고 여기에 2007년 이안 포터필드의 급작스런 사임과 박성화의 야반도주 사건등 부산 선수단 분위기가 막장으로 치달았다. 김용희도 코칭 스태프와의 마찰설이 돌면서 활약을 못 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
결국 2008년 마침 측면 수비수를 찾고있던 전북 현대 모터스에 1:2트레이드 형식으로 이적하게 된다. 트레이드 된 선수는 최광희, 최철우이다.
하지만 전북에서도 기대에 걸맞는 경기력을 선보이지 못했고 결국 1년만에 팀에서 방출되어 강릉시청 축구단에 입단하게 되었다. 이후에는 주전으로 좋은 활약을 선보이다 시즌 도중 인천 코레일으로 팀을 옮겼고, 시존 종료 이후에는 인도네시아 무대로 진출해 페르시바 발릭파판, 스리위자야 FC, 아레마 말랑 등의 팀에서 활약하였다.
3. 플레이 스타일 [편집]
4. 기타 [편집]
5. 관련 문서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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