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복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김영복의 역대 등번호 |
이름 | 김영복(金榮福 / Young-bok Kim) |
생년월일 | |
국적 | |
출신학교 | 미성초-강남중-서울고 |
포지션 | |
투타 | |
프로입단 | |
소속팀 |
1. 개요 [편집]
2. 선수 경력 [편집]
서울고등학교 출신으로 2003년 드래프트에서 4라운드 전체 31순위로 삼성 라이온즈의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진갑용, 이정식 다음 가는 제3의 포수로 1군에 종종 등록되어 활약했다.[1] 제법 촉망받는 유망주로 활약했지만, 문제는 부상이었다. 허리를 다치면서 포수로서의 기량이 떨어졌고, 결국 2007년에 방출되었다. 그리고 상무나 경찰 야구단 합격에도 실패하면서 프로 선수로서 은퇴하게 되었다.
군 문제를 해결한 후에는 탐라대학교 야구부 코치로 활동하면서 야구계에 계속 남았다. 그런데 2011년 NC 다이노스의 창단과 관련해서 공개 트라이아웃을 하게 되자 이에 응시했고, 합격에 성공했다. 원래는 내야수로 1루와 3루 수비를 연습하다가, 포수 부족을 대비해 원 포지션인 포수로 다시 전향해서 포수로서 뛰고 있다. 재밌는 사실은 탐라대학교에서 제자였던 오세직과 같은 팀이 되었다는 것. 오세직은 그래서 탐라대 시절에는 코치님이라 부르던 김영복을 형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2012년 7월부로 NC 선수단 평가에 의해 계약 해지되었다고 한다.
군 문제를 해결한 후에는 탐라대학교 야구부 코치로 활동하면서 야구계에 계속 남았다. 그런데 2011년 NC 다이노스의 창단과 관련해서 공개 트라이아웃을 하게 되자 이에 응시했고, 합격에 성공했다. 원래는 내야수로 1루와 3루 수비를 연습하다가, 포수 부족을 대비해 원 포지션인 포수로 다시 전향해서 포수로서 뛰고 있다. 재밌는 사실은 탐라대학교에서 제자였던 오세직과 같은 팀이 되었다는 것. 오세직은 그래서 탐라대 시절에는 코치님이라 부르던 김영복을 형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2012년 7월부로 NC 선수단 평가에 의해 계약 해지되었다고 한다.
3. 여담 [편집]
4. 연도별 성적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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