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숭빈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金崇斌
? ~ 819년
신라의 상대등.
원성왕 8년(792년) 헌평태자 김의영이 태자가 되자 시중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2년 뒤인 794년 김의영이 사망하자 시중 자리에서 물러나고 후임 시중은 태손 김준옹의 동생 김언승이 되었다.
이후 헌덕왕 원년(809년) 상대등에 임명되었으며, 헌덕왕의 즉위를 당헌종에게 고하고 문극을 하사받았다. 이후 10년간 상대등의 직위에 있었으며 819년 사망해 후임 상대등은 태제 김수종이 되었다.
김의영의 태자 책봉 및 사망 시점이 그가 시중으로 활동했던 시점과 일치하는 점 때문에 헌평태자와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태자로 지명되었을 당시 김의영도 꽤나 장성한 나이였으므로, 흥덕왕 사후 정상적이라면 차남인 헌평태자 가문에서 차기 국왕이 배출되었겠지만 정작 왕위 계승권이 있던 건 3남인 김예영의 가문이었다. 그의 가계가 이후 왕위계승권에서 배제된 이유는 확실하지 않으나 김헌창의 난에 가담했기 때문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 ~ 819년
신라의 상대등.
원성왕 8년(792년) 헌평태자 김의영이 태자가 되자 시중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2년 뒤인 794년 김의영이 사망하자 시중 자리에서 물러나고 후임 시중은 태손 김준옹의 동생 김언승이 되었다.
이후 헌덕왕 원년(809년) 상대등에 임명되었으며, 헌덕왕의 즉위를 당헌종에게 고하고 문극을 하사받았다. 이후 10년간 상대등의 직위에 있었으며 819년 사망해 후임 상대등은 태제 김수종이 되었다.
김의영의 태자 책봉 및 사망 시점이 그가 시중으로 활동했던 시점과 일치하는 점 때문에 헌평태자와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태자로 지명되었을 당시 김의영도 꽤나 장성한 나이였으므로, 흥덕왕 사후 정상적이라면 차남인 헌평태자 가문에서 차기 국왕이 배출되었겠지만 정작 왕위 계승권이 있던 건 3남인 김예영의 가문이었다. 그의 가계가 이후 왕위계승권에서 배제된 이유는 확실하지 않으나 김헌창의 난에 가담했기 때문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라이선스를 별도로 명시하지 않은 문서는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문서의 기여자는 역사 탭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접두어의 N: - 나무위키 사용자, R: - 리그베다 위키의 사용자를 뜻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나무위키에서 동일한 문서의 역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