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범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분류
생애 | 1915년 11월 2일 ~ 1998년 2월 18일 |
출생지 | |
국적 | |
본관 | 안성 김씨 |
가네야마 미쓰시(金山照) | |
직업 | |
1. 개요 [편집]
2. 일생 [편집]
1915년 평안남도 강서군(현 남포특별시) 반석면 출생. 1934년 신징(新京)사범학교를 나와 1937년 봉천군관학교 5기생으로 졸업했다. 당시 졸업 성적 우수자에게는 일본 육사에 편입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는데 여기에 선발되어 석희봉과 함께 1940년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제54기로 졸업했다.
만주로 돌아와 독립군 토벌을 목적으로 창설되어 악명 높은 간도특설대에서 정보반 책임자(주임)으로 활동하였다. 이 정보반의 목적은 팔로군, 항일 지하공작원, 민병의 활동과 주민들의 사상 동태를 정찰하여 항일군민을 소탕하거나 체포하고 학살하기 위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정보반원은 각 중대에서 13명의 정예분자를 선발하여 조직되었으며, 정보 수집을 넘어 항일무장세력이나 민간인을 직접 체포, 심문하고 학살하는 일까지 담당하였다.[1]
김석범은 간도특설대에서 활동한 공로를 인정받아 훈6위 주국장(柱國章)을 수여받았다. 1945년 8월 소련군에 의해 무장해제 당한 뒤, 신징(新京)으로 가서 정일권의 뒤를 이어 신징보안사령부 사령관을 맡았다.
1946년 인천으로 귀국한 뒤 조선해안경비대 견습사관을 거쳐 장교로 임관한 뒤 교두, 사령관, 참모장을 지냈다. 해병대가 창설되자 초대 해병대사령관이 된 신현준의 권유로 해병대로 전과하였고, 1953년부터 제2대 해병대사령관을 지냈다.
1960년 해병대 중장으로 예편한 뒤 대한민국재향군인회 부회장, 한국기계 사장, 성우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1998년 사망하여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만주로 돌아와 독립군 토벌을 목적으로 창설되어 악명 높은 간도특설대에서 정보반 책임자(주임)으로 활동하였다. 이 정보반의 목적은 팔로군, 항일 지하공작원, 민병의 활동과 주민들의 사상 동태를 정찰하여 항일군민을 소탕하거나 체포하고 학살하기 위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정보반원은 각 중대에서 13명의 정예분자를 선발하여 조직되었으며, 정보 수집을 넘어 항일무장세력이나 민간인을 직접 체포, 심문하고 학살하는 일까지 담당하였다.[1]
김석범은 간도특설대에서 활동한 공로를 인정받아 훈6위 주국장(柱國章)을 수여받았다. 1945년 8월 소련군에 의해 무장해제 당한 뒤, 신징(新京)으로 가서 정일권의 뒤를 이어 신징보안사령부 사령관을 맡았다.
1946년 인천으로 귀국한 뒤 조선해안경비대 견습사관을 거쳐 장교로 임관한 뒤 교두, 사령관, 참모장을 지냈다. 해병대가 창설되자 초대 해병대사령관이 된 신현준의 권유로 해병대로 전과하였고, 1953년부터 제2대 해병대사령관을 지냈다.
1960년 해병대 중장으로 예편한 뒤 대한민국재향군인회 부회장, 한국기계 사장, 성우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1998년 사망하여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3. 인물 연표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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