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돈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분류
제11대 서울특별시장 김상돈 金相敦 | Kim Sang-don | |
성명 | 김상돈(金相敦) |
출생 | |
사망 | |
직업 | 정치인, 공무원, 기자 |
재임기간 | 제11대 서울특별시장 |
1960년 ~ 1961년 | |
파일:external/www.wolyo.co.kr/28422_22113_5958.jpg
▲ 최초 민선서울시장을 지낼 당시 1961년 3.1절 행사에 참석한 김상돈(사진 가운데 콧수염에 국민복을 입은 게 특징이다).
노년의 모습 |
1. 개요 [편집]
2. 일생 [편집]
황해도 재령군 북율면#에서 김정연(金貞淵)의 아들로 태어나 일본 메이지가쿠인[1] 신학부를 졸업했다. 그 후 미국으로 건너가 목사일을 하다가 해방 이후에 귀국했다. 초대, 3대, 4대, 5대 국회의원과 서울시장 등을 지냈고, 초대 국회의원 재임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책임자가 되었다. 카이저 수염과 국민복 차림이 인상적인 미남으로 키가 크고 훤칠했다. 서울특별시장을 지내다가[2] 5.16 군사정변 이후 정계를 떠났다. 그러다 신민당으로 복귀해 박정희 정권과 대립각을 세웠다. 10월 유신이 선포될 무렵 훗날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다른 무엇보다 반민특위 책임자로 활동한 것이 유명한데, 이 활동 기간 동안 벌어진 사고와 이에 대한 대처로 도덕성 문제로 비판받는다. 1949년에 지프차를 운전하다가 마포에서 어린이를 치어죽였다. # 김상돈은 이걸 업무상 과실치사로 공판 청구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죽은 사람을 밀장(남몰래 지내는 장사, 암매장을 의미)과 사망일자를 전일로 소급하여 공문서를 작성한 건 김상돈의 호위기관인 안현모에게 있다고 했다. 1회 공판록 물론 반민특위와 김상돈의 도덕성 문제는 별개로 다루어져야 할 일이지만.
다른 무엇보다 반민특위 책임자로 활동한 것이 유명한데, 이 활동 기간 동안 벌어진 사고와 이에 대한 대처로 도덕성 문제로 비판받는다. 1949년에 지프차를 운전하다가 마포에서 어린이를 치어죽였다. # 김상돈은 이걸 업무상 과실치사로 공판 청구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죽은 사람을 밀장(남몰래 지내는 장사, 암매장을 의미)과 사망일자를 전일로 소급하여 공문서를 작성한 건 김상돈의 호위기관인 안현모에게 있다고 했다. 1회 공판록 물론 반민특위와 김상돈의 도덕성 문제는 별개로 다루어져야 할 일이지만.
3. 소속 정당 [편집]
4. 선거이력 [편집]
연도 | 선거종류 | 소속정당 | 득표수(득표율) | 당선여부 | 비고 |
1948 | 제헌 국회의원 선거 (서울시 마포구) | 무소속 | - | 당선 | |
1954 | 제3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시 마포구 갑) | - | 당선 | ||
1958 | 제4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시 마포구) | - | 당선 | ||
1960 | 제5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시 마포구) | - | 당선 | ||
1960 | 1960년 지방선거 (제11대 서울특별시장) | - | 당선 | 최초의 민선 서울특별시장 |
5. 둘러보기 [편집]
6. 관련 문서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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