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용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1916년 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 고읍리 대팽이골에서 태어났다.#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복중학교를 4년 수료한 후 일본으로 유학, 제일고등학교 문과를 졸업하였다. 해방 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에 입학하여 졸업하였으며, 재학 중에 학생회장을 맡았다.
일제강점기 말 학병으로 징집되었다가 8.15 광복으로 귀국할 수 있었으며, 이때 귀환장병대 전라남도지부장을 맡기도 했다. 이후 내무부장관 비서관, 국방부장관 부관 및 비서관을 지냈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전라남도 담양군 선거구에 입후보하였으나 조선민족청년단 정균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군에 입대하여 육군 중령으로 예편하였다. 1950년 고향 담양군에서 제2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맏형 김홍용이 6.25 전쟁 중 조선인민군에 의해 피살되자, 1952년 2월 치러진 보궐선거에 자유당 후보로 동 지역구에 출마, 당선되어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2대 국회 동안 국방분과위원회 위원# 및 간사를 겸임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자유당 후보로 동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박영종 후보에게 밀려 낙선하였고, 곧 정계를 은퇴하였다. 이후 6대, 7대 국회에서는 동생 김성용이 전국구 의원을 역임하는 등, 3형제 모두 국회에 등원한 진기록을 보유하였다. 외조카가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이다.
일제강점기 말 학병으로 징집되었다가 8.15 광복으로 귀국할 수 있었으며, 이때 귀환장병대 전라남도지부장을 맡기도 했다. 이후 내무부장관 비서관, 국방부장관 부관 및 비서관을 지냈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전라남도 담양군 선거구에 입후보하였으나 조선민족청년단 정균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군에 입대하여 육군 중령으로 예편하였다. 1950년 고향 담양군에서 제2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맏형 김홍용이 6.25 전쟁 중 조선인민군에 의해 피살되자, 1952년 2월 치러진 보궐선거에 자유당 후보로 동 지역구에 출마, 당선되어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2대 국회 동안 국방분과위원회 위원# 및 간사를 겸임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자유당 후보로 동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박영종 후보에게 밀려 낙선하였고, 곧 정계를 은퇴하였다. 이후 6대, 7대 국회에서는 동생 김성용이 전국구 의원을 역임하는 등, 3형제 모두 국회에 등원한 진기록을 보유하였다. 외조카가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이다.
3. 선거 이력 [편집]
연도 | 선거종류 | 소속정당 | 득표수(득표율) | 당선여부 | 비고 |
1948 | 제헌 국회의원 선거 (전라남도 제4선거구[1]) | 10,009표 (25.28%) | 낙선 (3위) | ||
1952 | 제2대 국회의원 보궐선거 (전라남도 제21선거구[2]) | - | 당선 | ||
1954 | 제3대 국회의원 선거 (전라남도 제7선거구[3]) | 2,344표 (6.12%) | 낙선 (4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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