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필(1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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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2. 생애 [편집]
김동필은 1860년 10월 6일 경상북도 영천군 신령면 신덕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5년 1월 동지들과 함께 한십삼도유약소(大韓十三道儒約所)를 설치하고 일제의 침략정책을 규탄하는 상소운동을 전개했으며, 각국 공사관에 일제의 침략을 규탄하는 공한을 보내었다. 또한 1905년 11월에는 매국단체 일진회를 규탄하는 운동을 벌였다.
일제가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자, 을사조약의 파기와 을사5적의 처형을 요구하는 상소를 십삼도유약소의 동지들과 함께 연명으로 올리어 을사조약에 대한 반대투쟁을 전개하였다. 1907년 나철, 오기호 등과 함께 자신회(自新會)를 조직하고 이완용 등 을사오적을 처단하려다가 발각되어 1907년 7월에 10년의 유배형을 당하였다.
1909년 이상설이 제2회 만국평화회에 파견하는 국내대표로 김동필과 김진구(金鎭九)를 선정하여 극비리에 이들에게 여비를 보내어 상해로 나오도록 촉구했으나 일제의 연금으로 성공하지 못하였다. 한일병합 후 세상과 인연을 끊고 영천군에 은거하다가 1944년 12월 16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김동필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일제가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자, 을사조약의 파기와 을사5적의 처형을 요구하는 상소를 십삼도유약소의 동지들과 함께 연명으로 올리어 을사조약에 대한 반대투쟁을 전개하였다. 1907년 나철, 오기호 등과 함께 자신회(自新會)를 조직하고 이완용 등 을사오적을 처단하려다가 발각되어 1907년 7월에 10년의 유배형을 당하였다.
1909년 이상설이 제2회 만국평화회에 파견하는 국내대표로 김동필과 김진구(金鎭九)를 선정하여 극비리에 이들에게 여비를 보내어 상해로 나오도록 촉구했으나 일제의 연금으로 성공하지 못하였다. 한일병합 후 세상과 인연을 끊고 영천군에 은거하다가 1944년 12월 16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김동필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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