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돌손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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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편집]
조선의 인물.
무상[1]으로 음력 1597년 9월 16일에 명량 해전이 일어났는데, 수많은 왜군의 배가 오는 상황에서 이순신이 13척을 이끌고 요격에 나선 후에 왜군의 배에게 포위되는 상황에서 여러 장수들이 도망가려고 하자 이순신이 안위, 김응함 등에게 호통을 쳐 공격하도록 하면서 난전이 되어 여러 장수들도 왜군의 배를 공격했다.
이런 와중에 이순신의 배에 있다가 바다에 빠져있던 자를 보고 준사가 적장 마다시라고 지목했는데, 이 때 김돌손은 이순신의 명령에 따라 갈고리로 낚아 올렸다. 마다시가 올라오자 준사가 마다시인 걸 확인하면서 그 시체를 토막내 적에게 보여 기세를 꺾었다.
무상[1]으로 음력 1597년 9월 16일에 명량 해전이 일어났는데, 수많은 왜군의 배가 오는 상황에서 이순신이 13척을 이끌고 요격에 나선 후에 왜군의 배에게 포위되는 상황에서 여러 장수들이 도망가려고 하자 이순신이 안위, 김응함 등에게 호통을 쳐 공격하도록 하면서 난전이 되어 여러 장수들도 왜군의 배를 공격했다.
이런 와중에 이순신의 배에 있다가 바다에 빠져있던 자를 보고 준사가 적장 마다시라고 지목했는데, 이 때 김돌손은 이순신의 명령에 따라 갈고리로 낚아 올렸다. 마다시가 올라오자 준사가 마다시인 걸 확인하면서 그 시체를 토막내 적에게 보여 기세를 꺾었다.
2. 창작물에서 [편집]
영화 명량을 바탕으로 옮긴 소설 명량에서는 제주도에서 소고기가 도착하자 병사들에게 배식했으며, 구루시마 미치후사가 배홍석을 비롯한 조선 사람들 63명의 시체를 보내면서 그 광경을 본 조태식, 오계적 등이 이들이 죽은 것을 이순신 탓으로 돌리면서 수군거리는 것을 들은 이회가 듣고 칼을 들어 수군거린 자들을 죽이려 하자 이를 말린다.
전투에서는 화포를 지휘하는 역할을 담당했고 화포를 배치할 때 오둑이가 비격진천뢰를 떨어뜨리자 똑바로 못하냐고 호통치기도 했다. 대장선을 제외한 11척이 뒤로 물러서자 욕을 내뱉으면서 이순신이 무작정 돌진해서 너무하고 따라오지 않는 장수들은 더한다면서 양 쪽을 나무라기도 했다. 전투가 끝난 후에는 오둑이가 죽은 줄 알고 슬퍼하다가 오둑이가 살아있는 것을 확인하자 기뻐했으며, 이순신의 명령에 따라 판자에 못을 박는 것으로 시신의 숫자를 새겼다.
전투에서는 화포를 지휘하는 역할을 담당했고 화포를 배치할 때 오둑이가 비격진천뢰를 떨어뜨리자 똑바로 못하냐고 호통치기도 했다. 대장선을 제외한 11척이 뒤로 물러서자 욕을 내뱉으면서 이순신이 무작정 돌진해서 너무하고 따라오지 않는 장수들은 더한다면서 양 쪽을 나무라기도 했다. 전투가 끝난 후에는 오둑이가 죽은 줄 알고 슬퍼하다가 오둑이가 살아있는 것을 확인하자 기뻐했으며, 이순신의 명령에 따라 판자에 못을 박는 것으로 시신의 숫자를 새겼다.
[1] 항해 중에는 돛과 돛대를 관리하고 정박시에는 물을 긷는 일을 하는 수군 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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