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윤(1894)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본관
출생
함경도 명천현 상가사 일향리[1]
(현 함경북도 명천군 연덕리)
사망
몰년 미상
사망지 미상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목차
1. 개요2. 생애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김덕윤은 1894년생이며 함경도 명천현 상가사 판령리(현 함경북도 명천군 연덕리) 출신이다. 그는 1924년 1월 중국 지린성 연길현에서 의성단원(義成團員)으로서 서창무·박창환(朴昌煥)·이성필(李成弼) 등과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1924년 1월 12일 밤 중국 연길현 수신사 대팔포 강회령촌에서 동민들을 대상으로 독립신문경고문(獨立新聞警告文) 등을 보이며,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1월 15일 밤 연길현 수신사 대팔포구(大八浦口) 장공칠의 집에서, 1월 18일 밤에는 연길현 수신사 대팔포(大八浦) 강신흥촌(江新興村) 중촌(中村) 방경률(方京津)의 집에서 각각 동민들을 대상으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4년 9월 29일 청진지방법원에서 이른바 강도 및 1919년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8년을 받고 공소했지만, 1925년 1월 2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8년 칙령 제270호에 의해 징역 4년 10월 24일로 감형되었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김덕윤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 1896년 상가면으로 개편되었고,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 일향리의 일부를 분리하여 판령동이 신설되었다. 인근의 자가리·초장리와 함께 김해 김씨 집성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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