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순(1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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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김덕순은 1877년생이며 경기도 강화유수부 부내면 동문리(현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출신이다. 그는 강화진위대에서 복무하던 중 1907년 7월 정미7조약에 따라 진위대가 강제 해산당하자 박정빈 의병장의 부대에 가담했다. 이후 김용기(金龍基)·지홍일(池洪一)·박계석·조인선(趙仁善)·고부성(高夫成) 등 수십 명의 동료 의병과 함께 총기로 무장하고 강화도 일대에서 군자금 수합 활동을 벌였다.
그는 교동 송가도, 강화도, 석모도, 말도, 망도, 산이포, 풍덕군 영청동, 개성군 금릉포 등지에서 지속적으로 군자금을 수합했다. 또 1908년 7월 24~25일 강화도 말도 해안에 정박한 기선(汽船)을 습격하여 군자금과 군수품을 탈취했다. 그리고 그해 7월에는 강화도 석포에서 의병 활동을 밀고한 송대현(宋大鉉)과 양학진(梁學辰)을 처단했으며, 인천 서쪽 해상에서 일본 어선을 공격하여 일본인 선원 1명을 사살했다.
그러다 체포된 그는 1909년 3월 23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교수형을 선고받았고, 그해 형이 집행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김덕순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그는 교동 송가도, 강화도, 석모도, 말도, 망도, 산이포, 풍덕군 영청동, 개성군 금릉포 등지에서 지속적으로 군자금을 수합했다. 또 1908년 7월 24~25일 강화도 말도 해안에 정박한 기선(汽船)을 습격하여 군자금과 군수품을 탈취했다. 그리고 그해 7월에는 강화도 석포에서 의병 활동을 밀고한 송대현(宋大鉉)과 양학진(梁學辰)을 처단했으며, 인천 서쪽 해상에서 일본 어선을 공격하여 일본인 선원 1명을 사살했다.
그러다 체포된 그는 1909년 3월 23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교수형을 선고받았고, 그해 형이 집행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김덕순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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