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선(1904)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출생 | |
사망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김덕선은 1904년 7월 17일 전라남도 광주군 기례방면 누항리(현재 광주광역시 북구 누문동)의 평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4년 7월 담양공립보통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던 중 동료 교사들과 함께 담양흥학관(潭陽興學館)에 야학을 개설하여 한글의 보급 등 독립정신을 고취시켰다. 그러나 일제 경찰에게 발각되어 체포되었다가 10여일 만에 석방되었고, 교사 직에서 면직당했다.
이후 1925년 4월에 도쿄 니혼대학에 입학하여 1927년 3월까지 수학하면서 한인 유학생 독립운동단체에 가입하고 항일독립운동의 국내 활동을 위해 귀국했다. 1927년 4월에서 1928년 8월에 걸쳐 담양흥학관에서 야학을 다시 재개하여 소비조합운동과 더불어 농민경제와 농업기술을 지도하며 농촌청년들의 항일독립운동을 규합·조직하여 활동하다가 광주경찰서에 검거되었으며, 같은 해 8월 26일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경기도경찰부에 구금되었다.
이후 1925년 4월에 도쿄 니혼대학에 입학하여 1927년 3월까지 수학하면서 한인 유학생 독립운동단체에 가입하고 항일독립운동의 국내 활동을 위해 귀국했다. 1927년 4월에서 1928년 8월에 걸쳐 담양흥학관에서 야학을 다시 재개하여 소비조합운동과 더불어 농민경제와 농업기술을 지도하며 농촌청년들의 항일독립운동을 규합·조직하여 활동하다가 광주경찰서에 검거되었으며, 같은 해 8월 26일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경기도경찰부에 구금되었다.
1928년 12월 14일 경기도경찰부에서 촬영된 사진. |
1930년 12월 5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된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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