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락(1851)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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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
자 / 호 | 학원(學源) / 만송(晩松) |
상훈 | 건국포장 |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7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김대락은 1851년생이며 경상도 청송도호부 현북면 신성동(현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 출신이다. 그는 1896년 1월 청송에서 의병을 일으킨 심성지에게 가담하여 의진의 참모를 맡았다가 곧이어 전투편제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중군장(中軍將)에 선임되었다. 이후 심성지 의진을 주력군을 이끌고 작전을 개시한 그는 1896년 4월 2일 인근의 김상종(金象鍾)의진 및 김하락 의진과 연계하여 감은리 뒷산에서 관군과 조우하여 교전 끝에 7~8명을 사살했다.
뒤이어 마평과 경주, 인부 등지에서 관군과 맞붙었으나 중과부적으로 패전했으며, 이후엔 심성지의 지시에 따라 영덕의진을 지원하는 등 일련의 활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고종이 아관파천 후 의병 해산 조칙을 내리자 부득이 해산하였으며, 이후 자택에 은거했다가 1905년 10월 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7년 김대락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뒤이어 마평과 경주, 인부 등지에서 관군과 맞붙었으나 중과부적으로 패전했으며, 이후엔 심성지의 지시에 따라 영덕의진을 지원하는 등 일련의 활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고종이 아관파천 후 의병 해산 조칙을 내리자 부득이 해산하였으며, 이후 자택에 은거했다가 1905년 10월 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7년 김대락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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