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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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요2. 생애
2.1. 성장 과정2.2. 운동권 활동
3. 죽음과 그 여파

1. 개요 [편집]

1965년 ~ 1991년 5월 8일 (향년 26세)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가.

2. 생애 [편집]

2.1. 성장 과정 [편집]

1965년 경기도 파주군(현 파주시)에서 태어났다. 4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가 새어머니를 들였다는 걸 알면서도 새어머니를 친어머니처럼 따랐다고 한다.

1982년 인천 수도전기통신고등학교에 입학했으나 이듬해인 1983년 중퇴하고 1984년 검정고시를 통해 고졸이 되었다.

2.2. 운동권 활동 [편집]

이후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에 들어가지 않고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던 김기설은 1988년 9월 성남민청련 창립대회에서 김근태의 강연을 듣고 즉시 성남민청련에 가입하고 열렬한 운동권 활동을 하였다.

민청련이 해체된 이후에도 운동권 활동을 계속한 김기설은 1991년 1월 전민련에 가입해 사회부장으로 활동했다.

3. 죽음과 그 여파 [편집]

1991년 4월 25일 운동권 학생 강경대가 시위 도중 경찰과의 대치 중 경찰의 구타로 숨지자 수많은 운동권들이 그에 대한 항의로 분신자살을 했는데 김기설 역시 1991년 5월 8일 서강대학교 옥상에서 노태우 정권 퇴진과 경찰의 사과를 요구하고 분신 후 투신해 숨졌다.

이에 당시 검찰은 강기훈이 그의 유서를 대필하고 그의 죽음을 부추겼다며 징역까지 받아냈는데 24년 만에 재심을 통해 무죄로 판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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