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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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2.1. 성장 과정 [편집]
2.2. 운동권 활동 [편집]
3. 죽음과 그 여파 [편집]
1991년 4월 25일 운동권 학생 강경대가 시위 도중 경찰과의 대치 중 경찰의 구타로 숨지자 수많은 운동권들이 그에 대한 항의로 분신자살을 했는데 김기설 역시 1991년 5월 8일 서강대학교 옥상에서 노태우 정권 퇴진과 경찰의 사과를 요구하고 분신 후 투신해 숨졌다.
이에 당시 검찰은 강기훈이 그의 유서를 대필하고 그의 죽음을 부추겼다며 징역까지 받아냈는데 24년 만에 재심을 통해 무죄로 판명되었다.
이에 당시 검찰은 강기훈이 그의 유서를 대필하고 그의 죽음을 부추겼다며 징역까지 받아냈는데 24년 만에 재심을 통해 무죄로 판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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