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만(1882)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김기만은 1882년생이며 전라북도 장수군 외진전면 월곡리 출신이다. 그는 1907년경 이석용 의병장의 부대에 가담하여 전북 임실군에서 활동했다. 특히 1908년 3월 2일 이석용 의병장의 지휘 아래 의병 30명과 함께 화승총 20정으로 무장하고 전북 임실군 하북면 막동의 친일 동장 심자윤(沈子允)에게 "우리는 의병인 바 금품을 내라"고 하면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징발하였다.
또한 같은 해 5월 23일에는 임실군 주천면 목동의 친일 동장으로부터 군자금을 거두었으며, 상북면 도봉동의 친일 동장으로부터도 군자금을 징수하였다. 이후에도 그는 주로 의병활동을 위한 군자금과 군수품을 조달하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같은 해 7월 29일 임실군 상북면 병암리의 친일 동장으로부터 군자금을 징수하였다. 그러다 체포되어 1909년 1월 31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7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 1910년 1월 27일에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김기만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또한 같은 해 5월 23일에는 임실군 주천면 목동의 친일 동장으로부터 군자금을 거두었으며, 상북면 도봉동의 친일 동장으로부터도 군자금을 징수하였다. 이후에도 그는 주로 의병활동을 위한 군자금과 군수품을 조달하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같은 해 7월 29일 임실군 상북면 병암리의 친일 동장으로부터 군자금을 징수하였다. 그러다 체포되어 1909년 1월 31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7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 1910년 1월 27일에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김기만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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