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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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의성군 출신 독립운동가, 김경성2. 양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김경성

1. 의성군 출신 독립운동가, 김경성 [편집]

성명
김경성(金慶聲)
생몰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도덕리
사망지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김경성은 1879년 2월 11일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도덕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경북 김천군 개영면에서 3.1 운동을 주도했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경 군자금 1,000원을 개인 재산의 처분으로 마련하는 한편 동삼성에 이동녕·이시영 등이 설립한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하기를 희망하는 청년 3명을 모집하여 동삼성 안동현으로 가서 조강제(趙强濟)[1]에게 인계하였다.

1920년 2월 다시 경주지방에서 군자금 및 신흥무관학교 학생모집을 위하여 활약하다가 체포되어 1921년 4월 14일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청에서 소위 공갈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의성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46년 9월 8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6년 김경성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2. 양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김경성 [편집]

성명
김경성(金慶星)
생몰
경기도 양평군 갈산면 양근리
사망지
추서
대통령표창

김경성은 1888년 6월 10일 경기도 양평군 갈산면 양근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24일 양평군 갈산면 양근시장에서 이신규(李藎珪)가 주도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여 1,000여명의 군중을 이끌고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는 이 날 오후 3시 경에는 양근리 면사무소에 가서 면장에게 만세운동 참여를 요구하였다.

이로 인해 체포된 그는 1919년 7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고, 동년 8월 1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공소기각, 동년 10월 23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 양평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0년 10월 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김경성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1] 독립유공자로 지정된 조강제와 동명이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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