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강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극락강에서 넘어옴
분류
국가하천 영산강 榮山江 | Yeongsangang (River) | |
발원지 | |
하구 | |
수계 | 영산강 수계 |
유로연장 | 129.5 km |
유역면적 | 3,467 km² |
1. 개요 [편집]
2. 자연지리 [편집]
2.1. 지형 [편집]
1910년대 지형도 | 1980년대 지형도 |
영산강 중·하류 지역의 간석지 개간 과정[출처] |
나주 평야의 남쪽 지역은 후빙기에 해수면이 상승하며 형성된 만이었다. 영암읍과 나주시는 지금은 내륙이지만, 과거에 영산강은 감조하천이었고 영암읍내, 월출산 인근, 나주 영산포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2] 따라서 영산강 하류에는 넓은 간석지, 갯벌이 발달했다.
간석지가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 이후(조선 후기)로, 영산강의 퇴적과 더불어 17세기 중엽에 삼림이 제거되고 경사지가 훼손되어 주변 구릉지에서 유출되는 토사가 많아진 것이 간척지 매립을 촉진한 것으로 추정된다. 자연적인 퇴적 외에도 17-19세기에 인구 압박과 토지 수요 증가에 따라 저지대가 개간되어 새로운 마을이 형성되었다. 지역 토호들이 주도하여 여러 개간지가 생겼는데 영암의 '지남제들', 무안의 '소포제들' 등이 해당된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에 의해 '장항포들', '영화농장들' 등의 개간지가 형성된다. 광복 후에도 지역 지주에 의해 매립이 지속되어 영암의 '학파농장들', '숭의농장들'이 개간되었다.[출처]
현재의 지형은 1981년에 영산강하굿둑의 건설을 통해 완성된 것이다.
간석지가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 이후(조선 후기)로, 영산강의 퇴적과 더불어 17세기 중엽에 삼림이 제거되고 경사지가 훼손되어 주변 구릉지에서 유출되는 토사가 많아진 것이 간척지 매립을 촉진한 것으로 추정된다. 자연적인 퇴적 외에도 17-19세기에 인구 압박과 토지 수요 증가에 따라 저지대가 개간되어 새로운 마을이 형성되었다. 지역 토호들이 주도하여 여러 개간지가 생겼는데 영암의 '지남제들', 무안의 '소포제들' 등이 해당된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에 의해 '장항포들', '영화농장들' 등의 개간지가 형성된다. 광복 후에도 지역 지주에 의해 매립이 지속되어 영암의 '학파농장들', '숭의농장들'이 개간되었다.[출처]
현재의 지형은 1981년에 영산강하굿둑의 건설을 통해 완성된 것이다.
2.2. 지류 [편집]
하류 |
- 남창천
- 망월천
- 영암천
- 학산천
- 호동천
- 도포천
- 망호천
- 금성천
- 삼포천
- 성남천
- 금곡천
- 대치천
- 사천천
- 석진천
- 봉산천
- 함평천
- 무안천
- 엄다천
- 학교천
- 대동천
- 신광천
- 고막원천
- 안곡천
- 구산천
- 월봉천
- 식지천
- 해보천
- 금석천
- 용암천
- 대도천
- 유평천
- 문평천
- 만봉천
- 금천
- 봉황천
- 영산천
- 나주천
- 장성천
- 감정천
- 노안천
- 지석천(드들강)
- 산포천
- 대촌천
- 노동천
- 송학천
- 대초천
- 도곡천
- 화순천
- 한천천
- 석정천
- 춘양천
- 송석천
- 오류천
- 청풍천
- 활용천
- 송정천
- 추동천
- 쌍봉사천
- 평동천
- 평림천
- 왕동천
- 구룡천
- 동화천
- 관동천
- 개천
- 장성천
- 덕진천
- 대악천
- 서창천
- 증심사천
- 풍영정천
- 장수천
- 평산천
- 학림천
- 용산천
- 증암천
- 창평천
- 석곡천
- 오례천
- 수북천
- 월산천
- 금성천
- 석현천상류
3. 인문지리 [편집]
3.1. 명칭 [편집]
담양에서는 죽록천(竹綠川), 광주에서는 극락강(極樂江) 또는 칠천(漆川)[4], 나주에서는 통일신라 때 이름 금성(錦城)에서 유래한 금강(錦江) 등으로 불렀다. 현재의 강 이름은 나주의 포구마을인 영산포(榮山浦)에서 유래한 것이다.
광주에서는 21세기 이후 극락강이라는 이름은 잘 안 쓰다보니 지역 사람들도 이런 이름이 있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흔적이 광주 곳곳에 남아 있는데 극락강역, 광주극락초등학교[5], 극락교, 극락친수공원에서 찾을 수 있다.
극락초교는 그옆에 복개하천인 극락천이 광주천과 합류해서 극락이름이 붙었다. 극락강과 상관없다.
광주에서는 21세기 이후 극락강이라는 이름은 잘 안 쓰다보니 지역 사람들도 이런 이름이 있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흔적이 광주 곳곳에 남아 있는데 극락강역, 광주극락초등학교[5], 극락교, 극락친수공원에서 찾을 수 있다.
극락초교는 그옆에 복개하천인 극락천이 광주천과 합류해서 극락이름이 붙었다. 극락강과 상관없다.
3.2. 교통 [편집]
상술했듯 과거에는 나주 영산포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으므로 수운이 발달했다. 고려 시대에는 영산포에 해릉창(海陵倉), 조선 전기에는 영산창(榮山倉)이 있어 조운 기능을 수행했다. 1512년에 영광의 법성포창(法聖浦倉)으로 통합되면서 조운 기능은 사라졌지만 수운은 지속되었다. 영산강의 수운 기능이 상실된 것은 육상교통의 발달로 1960년대에 영산포가 쇠퇴하고 1981년에 하굿둑이 건설되면서이다.
'영산강 유역 고대문화권 특정지역 지정 및 개발 계획'의 일환으로, 2007년부터 나주시 나주대교에서 영산강하굿둑을 잇는 강변도로 건설 사업이 진행 중이다.
'영산강 유역 고대문화권 특정지역 지정 및 개발 계획'의 일환으로, 2007년부터 나주시 나주대교에서 영산강하굿둑을 잇는 강변도로 건설 사업이 진행 중이다.
3.3. 구조물 [편집]
하류 |
라이선스를 별도로 명시하지 않은 문서는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문서의 기여자는 역사 탭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접두어의 N: - 나무위키 사용자, R: - 리그베다 위키의 사용자를 뜻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나무위키에서 동일한 문서의 역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