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규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성명
권태규(權泰圭)
본관
생몰
경상북도 봉화군 와단면 한수리
(현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4][5]
사망지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목차
1. 개요2. 생애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독립유공자 권재호는 권태규의 증조부 권재원(權載瑗)의 사촌 동생으로, 권태규에게는 재종증조부가 된다.

2. 생애 [편집]

권태규는 1910년 4월 22일 경상북도 봉화군 와단면 한수리(현 춘양면 의양리)의 양반가에서 아버지 권중구(權重九)와 어머니 청주 정씨 정약흠(鄭若欽)의 딸 사이의 3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고향에서 정미업에 종사하였다.[6]

그는 1935년 경기도 경성부에서 안승락의 공산주의자 그룹 활동에 관여하고, 동년 9월 이재유의 공산주의 운동과 연관되어 체포되었다가 석방되었다. 이후 1936년 2월 경부터 김희성(金熙星)의 공산주의자 그룹에 참여하여 연락 및 동지 획득을 위한 활동을 하다 같은 해 12월 경기도경찰부에 검거되었으며, 1937년 5월 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미결수로 구류를 언도받았다.

그러다가 1938년 5월 21일 경성지방법원에서의 예심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에 대해 면소 처분을 받았고#, 이틀 후인 5월 23일 출옥하였다.#
1937년 3월 16일, 경기도경찰부 형사과에서 촬영된 사진.

이후 봉화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7년 4월 7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9년 권태규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1937년 5월 14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된 사진.[2] 복야공파 침(斟)계 33세 태(泰) 춘(春) 용(龍) 정(正) 항렬.[3] 안동 권씨 대동세보에는 4월 22일이 기일로 기재되어 있다.[4] 경기도 강화군(현 인천광역시 강화군) 출신이라고도 한다.1937년 5월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5] 안동 권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권상경·권재호도 이 마을 출신이다.[6] 당시 정미소 사장이라면 동네 최고 부자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부유한 축에 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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