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분류
權知. 조선 시대에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각 관청에 분견되어 임용 대기중인 견습관원.
일종의 관리시보(官吏試補)로, 오늘날의 '임용대기자', '발령대기자', 공무원시보 등에 해당한다. 원래의 의미는 임시직이라는 뜻이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권한대행' 등을 일컫는 '검교(檢校)'와는 의미가 다르다.
조선 초기에는 과거와 상관없이 여러 관서에서 두고 있던 비정규직이었다. 뒤에는 과거합격자를 우선 임명하게 되었고, 합격자들이 적체되면서 비합격자를 권지로 임명하는 일은 없어졌다. 차차 과거합격자의 발령 전 임시대기직제로 변화하였다.
문과 출신의 경우 갑과 3인만이 즉시 임용되었고, 나머지는 성균관·승문원·교서관의 3관에 권지로 분관되었다. 무과 출신의 경우는 훈련원과 별시위에 분관되었다. 이들의 직명은 권지 + 소속관 + 직책으로 구성되어, 권지승문원부정자·권지성균관학유·권지훈련원봉사 혹은 훈련원권지 등으로 호칭되었다. 해당기관에서 연수를 받기도 하고 임용대기만 계속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과거합격자의 권지 임명은 급제자들의 연령과 재능에 따라 이루어졌다. 즉, 연소하고 총민한 자는 승문원, 고금의 전고에 박식한 자는 교서관, 노숙하고 덕망 있는 자는 성균관에 분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홍문관이 설치된 이후에는 여기에도 분관이 되었는데, 학식과 문장이 탁월한 자를 권점(圈點)으로 엄선하였다. 급제자의 분관은 향후의 출세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것이었는데, 홍문관을 첫째로 꼽고 승문원을 그 다음으로 꼽았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급제자들이 적체되어 권지로 임명된 뒤 보통 6, 7년을 기다려야 9품 실직에 임용되었다. 승문원·교서관의 경우 4년, 성균관의 경우 8년이 경과한 뒤에 6품직인 참상관으로 승진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관직수에 비해 너무 많은 급제자들이 쏟아져 나왔으므로, 평생을 권지로 지내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에 비해 갑과 3인이나 기성의 참상관급제자, 50세 이상의 급제자들은 권지를 지내지 않고 바로 임용되었으므로 훨씬 빨리 승진할 수 있었다. 3관의 권지들에게는 의학·한학(漢學)·천문학 등의 습독관이나 향교의 교관이 주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편견 때문에 기피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종의 관리시보(官吏試補)로, 오늘날의 '임용대기자', '발령대기자', 공무원시보 등에 해당한다. 원래의 의미는 임시직이라는 뜻이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권한대행' 등을 일컫는 '검교(檢校)'와는 의미가 다르다.
조선 초기에는 과거와 상관없이 여러 관서에서 두고 있던 비정규직이었다. 뒤에는 과거합격자를 우선 임명하게 되었고, 합격자들이 적체되면서 비합격자를 권지로 임명하는 일은 없어졌다. 차차 과거합격자의 발령 전 임시대기직제로 변화하였다.
문과 출신의 경우 갑과 3인만이 즉시 임용되었고, 나머지는 성균관·승문원·교서관의 3관에 권지로 분관되었다. 무과 출신의 경우는 훈련원과 별시위에 분관되었다. 이들의 직명은 권지 + 소속관 + 직책으로 구성되어, 권지승문원부정자·권지성균관학유·권지훈련원봉사 혹은 훈련원권지 등으로 호칭되었다. 해당기관에서 연수를 받기도 하고 임용대기만 계속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과거합격자의 권지 임명은 급제자들의 연령과 재능에 따라 이루어졌다. 즉, 연소하고 총민한 자는 승문원, 고금의 전고에 박식한 자는 교서관, 노숙하고 덕망 있는 자는 성균관에 분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홍문관이 설치된 이후에는 여기에도 분관이 되었는데, 학식과 문장이 탁월한 자를 권점(圈點)으로 엄선하였다. 급제자의 분관은 향후의 출세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것이었는데, 홍문관을 첫째로 꼽고 승문원을 그 다음으로 꼽았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급제자들이 적체되어 권지로 임명된 뒤 보통 6, 7년을 기다려야 9품 실직에 임용되었다. 승문원·교서관의 경우 4년, 성균관의 경우 8년이 경과한 뒤에 6품직인 참상관으로 승진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관직수에 비해 너무 많은 급제자들이 쏟아져 나왔으므로, 평생을 권지로 지내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에 비해 갑과 3인이나 기성의 참상관급제자, 50세 이상의 급제자들은 권지를 지내지 않고 바로 임용되었으므로 훨씬 빨리 승진할 수 있었다. 3관의 권지들에게는 의학·한학(漢學)·천문학 등의 습독관이나 향교의 교관이 주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편견 때문에 기피하는 경우가 많았다.
라이선스를 별도로 명시하지 않은 문서는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문서의 기여자는 역사 탭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접두어의 N: - 나무위키 사용자, R: - 리그베다 위키의 사용자를 뜻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나무위키에서 동일한 문서의 역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