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종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1. 개요 [편집]
2. 상세 [편집]
포천 출신, 본관은 안동. 찬성사이자 조선 최초의 대제학인 양촌 권근 선생의 6대손이며 개령현감이 되어 청렴강직(淸廉剛直)한 선정을 베풀어 칭송을 받았고 1592년 음력 3월 금산군 군수로 영전되어 부임하였다. 1592년,공이 금산군수가 된 해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권종은 인근의 수령들에게 격문을 보냈으며 공주목 목사 허욱과 여산군 군수 고경명이 호응하여 충북 영동군을 거쳐 금산으로 침입하는 왜적을 막아내기 위해 항전했다.
음력 6월 22일 왜적의 대군이 양산을 거쳐 몰려오므로 강을 사이에 두고 격전이 벌어졌다. 도강하려는 적을 무수히 살상했으나 그날 밤 야음을 타고 강을 건너온 왜군과 종일토록 혈전을 벌이다가 아들 권준과 함께 전사하였다.군민들이 그의 충절에 감복하여 시신을 거두어 포천의 선영에 장사지냈다.
난이 종결된 뒤에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정려가 세워졌으며 1709년 충민(忠愍)의 시호가 내려졌다. 참고로 사촌동생은 충장공 권율 공으로, 양촌 권근선생의 6대손인 두 분 다 나라를 위해 싸웠던 셈이다.
음력 6월 22일 왜적의 대군이 양산을 거쳐 몰려오므로 강을 사이에 두고 격전이 벌어졌다. 도강하려는 적을 무수히 살상했으나 그날 밤 야음을 타고 강을 건너온 왜군과 종일토록 혈전을 벌이다가 아들 권준과 함께 전사하였다.군민들이 그의 충절에 감복하여 시신을 거두어 포천의 선영에 장사지냈다.
난이 종결된 뒤에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정려가 세워졌으며 1709년 충민(忠愍)의 시호가 내려졌다. 참고로 사촌동생은 충장공 권율 공으로, 양촌 권근선생의 6대손인 두 분 다 나라를 위해 싸웠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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