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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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원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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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3번
황영구(2001)
권오원(2002)
최무영(2003)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50번
최무영(2002)
권오원(2003~2004)
김형근(2005~2006)
김형근(2005~2006)
권오원(2007~2011)
우병걸(2012)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90번
신희섭(2011)
권오원(2012~)
현역


삼성 라이온즈 No.90
권오원
權五元 / Kwon Oh-Won
출생
국적
학력
연천초 - 사직중 - 부산상고 - 동아대[1]
포지션
투타
프로입단
소속팀
군복무
상무 피닉스 (2005~2006)
지도자
삼성 라이온즈 2군 트레이닝 코치 (2012)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 트레이닝 코치 (2012)
삼성 라이온즈 1군 트레이닝 코치 (2012~2019)
삼성 라이온즈 2군 투수코치 (2020~)

목차
1. 소개2. 선수 시절3. 지도자 시절4. 연도별 성적

1. 소개 [편집]

부산상고 시절 좌완투수 이혜천과 동기생이며, 동아대 (1998학번) 시절 우완투수 이정민과 동기생으로 대학 야구를 평정했다.

삼성 라이온즈 2군 트레이닝 코치. 현역 시절 별명은 봄오원[2], 권커브[3].

참고로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우승을 하던 시절에 목격되었다. 하지만 엔트리에 든 건 아니여서 우승반지를 끼진 못했다.

2. 선수 시절 [편집]

2002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해 중간계투로 활약한 선수. 상무 복무 시절 선발, 중간계투, 마무리를 오가는 전천후 투수 역할을 했고, 상무 제대 후인 2007 시즌 초반에 권혁-권오준과 KKK 트리오[4]를 만든다며 삼성의 꽤 괜찮은 희망으로 떠올랐으나, 2008년 시즌 초반에 선동열이 컨디션이 좋았던 권오원을 마구 굴리면서 시간이 지날 수록 구위가 떨어지며 결국 1군에서 말소됐다.

2009 시즌 중 어깨 수술을 받고 2011 시즌 복귀해, 2군 경기에 등판하였다. 그 동안 경기 등판을 못해서 경기 감각을 잃었는지 성적은 그럭저럭이었다.

당시 상무는 선수층이 얇다는 이유[5]로 투수를 꽤 혹사시키는 운영을 했는데, 제대하자마자 선동열까지 권오원을 굴리면서 상무 시절의 좋았던 구위를 부상으로 잃게 된 것이 봄오원이라고 불린 핵심 원인이었다. 어깨 부상이 고질이 되면서 결국 버틸 수 없게 된 것. 이로 인해 겪었던 재활로 인해 트레이닝 코치가 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상황.

3. 지도자 시절 [편집]

결국 2011년 9월 16일,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2군 트레이닝코치로 잠깐 있다가 2012년 3월 9일,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에 트레이닝 코치로 합류해 코치 연수를 받고 8월말 귀국했다. 1군에서 어느 정도 활약한 건 2년 정도고, 그나마도 통산 100이닝을 넘기지 못했던 걸 감안하면 상당히 운 좋은 케이스.

2020년에는 2군 투수 코치로 보직을 변경했는데, 삼성 2군의 투수 유망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하면서 정현욱, 황두성, 오치아이 에이지, 조규제와 함께 삼성 유망주 폭발의 일등공신으로 불리고 있다.

4. 연도별 성적 [편집]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2
4
5
0
0
0
0
0.00
8
2
2
2003
4
7⅓
0
0
0
0
3.68
7
2
6
2004
1군 기록 없음
2005
2006
2007
24
26
4
1
0
4
4.85
26
15
16
2008
37
47⅓
2
2
0
3
4.18
50
20
25
2009
3
2⅔
0
1
0
0
3.38
2
5
2
2010
1군 기록 없음
2011
KBO 통산
(5시즌)
72
88⅓
6
4
0
7
4.08
93
44
51

[1] 1998학번[2] 시즌 초인 봄에 반짝 활약하여 삼성 팬들을 기대하게 하고 여름부터 폭망. 왠지 투상수가 삼성 시절 이 성질을 물려 받은 듯하다.[3] 상무 전역 후인 2007년 초 팀내 최고의 커브를 가진 선수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같은 해 윤성환정현욱이 복귀하면서 그대로 묻혔다.[4] 권오원이 셋 중 나이가 제일 많다. 하지만 인지도는 제일 떨어지고 본격적으로 1군에서 활약한 시기도 제일 늦다.[5] 선수를 뽑는다->부상으로 선수가 쉰다->남은 선수를 굴린다->굴린 선수는 부상을 입고 쉰다의 무한 반복이었다. 혹사에 대한 이해도도 상대적으로 낮은 시기였다. 결과적으로는 2010년대 중후반이 되어서야 상무에도 관리라는 게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의 혹사는 있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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