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손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Pasukan bola sepak kebangsaan Brunei | ||
이름 | 권오손 權五孫 | Kwon Oh-Son | |
출생 | ||
국적 | ||
신체 | 175cm | |
직업 | ||
소속 | 선수 | |
감독 | ||
국가대표 | 7경기 0골(대한민국 / 1979~1982) | |
1. 개요 [편집]
2. 선수 경력 [편집]
장안중학교와 동북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시립대학교에 진학했다. 1980년에 박종환 감독의 스카우트를 통해서 서울시청 축구단에 들어갔다. 1983년에 수퍼리그가 출범한 뒤 수비진 부족 문제를 안고 있던 국민은행 축구단에 이적했으나 그는 서울시청 축구단과 국민은행 축구단 양 측에 이중등록 되었기 때문에 두 팀의 일정을 소화해야 했고 국민은행 축구단에서는 1경기밖에 출장하지 못했다. 1984년에 럭키금성 황소로 이적하여 1985년과 1986년에 각각 리그 우승, 준우승을 견인했으나 1987년에 2경기 출장에 그쳐서 별다른 활약은 없었다. 1987년 시즌 종료 후 방출당하여 현대 호랑이로 이적한 뒤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국가대표로는 1979년에 충무팀에 선발된 뒤 다음 해에 화랑팀으로 올라가서 1980년 AFC 아시안컵 23인 스쿼드에 이름을 올렸다.
국가대표로는 1979년에 충무팀에 선발된 뒤 다음 해에 화랑팀으로 올라가서 1980년 AFC 아시안컵 23인 스쿼드에 이름을 올렸다.
3. 감독 경력 [편집]
1990년에 서울시청 축구단에서 트레이너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감독 자리까지 올라가서 2003년에 팀이 해체될 때까지 서울시청 축구단에 있었다. 팀이 해체된 뒤 2004년에 대한축구협회에서 기술위원을 지냈다가 협회의 주선으로 그해 11월에 브루나이로 떠났다. 이 당시 최영준이 귀국한 뒤 그에게 브루나이로 갈 것을 권유한 것이다. 그렇게 대한축구협회가 브루나이 정부와 교섭하여 좋은 대우와 예우를 받으며 브루나이로 가게 된 것이다.
그가 브루나이에 갔을 때 브루나이 대표팀의 감독 제안을 받았으나 지도자 경력이 없어서 청소년 대표팀부터 감독직을 수행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2007년부터 브루나이의 연령별 대표팀과 A대표팀 모두 감독직을 수행하게 되었다. 특히 2012년에는 아세안 대회(U-21)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성과를 올렸는데 이것이 브루나이 대표팀의 첫 국제대회 우승이었다.
그가 브루나이에 갔을 때 브루나이 대표팀의 감독 제안을 받았으나 지도자 경력이 없어서 청소년 대표팀부터 감독직을 수행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2007년부터 브루나이의 연령별 대표팀과 A대표팀 모두 감독직을 수행하게 되었다. 특히 2012년에는 아세안 대회(U-21)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성과를 올렸는데 이것이 브루나이 대표팀의 첫 국제대회 우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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