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자흥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1. 개요 [편집]
2. 행적 [편집]
원 말기에 홍건적의 난에 가담한 후, 군사를 일으켜 성을 함락하고 반란군의 수장이 된다. 뒤에 명나라를 건국하는 주원장을 등용하고 총사령관에 임명하면서 마씨(馬氏) 성을 가진 그의 양녀와 결혼시켰는데, 훗날 명 초대 황후가 되는 효자고황후 마씨이다.
후에 명을 세우는 주원장을 높이 평가하고 크게 쓰면서도 의심을 하곤 했는데, 이 때마다 마씨의 현명한 기지로 둘의 관계는 심각하게 틀어지지 않았다.
1355년 병사하면서 남은 그의 세력들은 주원장이 이끌게 되고 주원장이 명을 창업한 1368년 저양왕(滁陽王)으로 추증되었다.
비록 주원장의 친족은 아니지만, 그의 세력에서 명이 출발한 점, 그의 양녀가 초대 황후인 점, 끝내 둘의 관계가 틀어지지 않은 점을 들어 그가 시조에 준하는 대우를 받은 이유로 꼽고는 하는데, 이는 마치 후주의 시씨 가문이 송태조 조광윤에게 황위를 양위하고 송이 멸망할 때까지 받은 극진한 대우를 연상케 한다. 다만 후계를 물려줄 아들이 없었냐면 그건 아니었는데 첫째와 둘째는 전쟁중에 전사했고 셋째는 자신이 후계자인양 행세하면서 주원장을 죽일려다가 오히려 주원장에게 역습을 당해 처형당했다.
후에 명을 세우는 주원장을 높이 평가하고 크게 쓰면서도 의심을 하곤 했는데, 이 때마다 마씨의 현명한 기지로 둘의 관계는 심각하게 틀어지지 않았다.
1355년 병사하면서 남은 그의 세력들은 주원장이 이끌게 되고 주원장이 명을 창업한 1368년 저양왕(滁陽王)으로 추증되었다.
비록 주원장의 친족은 아니지만, 그의 세력에서 명이 출발한 점, 그의 양녀가 초대 황후인 점, 끝내 둘의 관계가 틀어지지 않은 점을 들어 그가 시조에 준하는 대우를 받은 이유로 꼽고는 하는데, 이는 마치 후주의 시씨 가문이 송태조 조광윤에게 황위를 양위하고 송이 멸망할 때까지 받은 극진한 대우를 연상케 한다. 다만 후계를 물려줄 아들이 없었냐면 그건 아니었는데 첫째와 둘째는 전쟁중에 전사했고 셋째는 자신이 후계자인양 행세하면서 주원장을 죽일려다가 오히려 주원장에게 역습을 당해 처형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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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후 추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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