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병도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성명 | 곽병도(郭炳燾) |
생몰 | |
사망지 | |
매장지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곽병도는 1880년 10월 9일 충청남도 공주군 대전촌 본 2정목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2년 음력 11월 정인교(鄭寅敎), 이범규(李範圭) 등 뜻을 함께 하는 8명의 동지들과 더불어 권총 및 단도를 휴대하고 충북 회인군 산수동에 소재한 양국환(梁國煥)의 집에 침입하여 군자금을 모집하고자 하였으나 양국환이 부재중이었으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 일로 경찰에 체포되었지만 1913년 12워 2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면소되었다.
이후 계속해서 독립운동의 기회를 모색하던 그는 1919년 강택진(姜宅鎭) 등이 조직한 조선13도총간부(朝鮮十三道總幹部)에 참여했다. 그는 조선13도총감부에서 군자금 수합 임무를 담당하여 경북 지역에 특파원으로 파견되어 1919년 10월부터 1920년 3월까지 경북 영주군의 각처에서 군자금을 모집했다. 그러나 이 일이 발각되면서 동료들과 함께 체포된 그는 1921년 6월 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정치범죄처벌령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인천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조용히 지내다 1968년 11월 1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 곽병도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2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이후 계속해서 독립운동의 기회를 모색하던 그는 1919년 강택진(姜宅鎭) 등이 조직한 조선13도총간부(朝鮮十三道總幹部)에 참여했다. 그는 조선13도총감부에서 군자금 수합 임무를 담당하여 경북 지역에 특파원으로 파견되어 1919년 10월부터 1920년 3월까지 경북 영주군의 각처에서 군자금을 모집했다. 그러나 이 일이 발각되면서 동료들과 함께 체포된 그는 1921년 6월 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정치범죄처벌령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인천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조용히 지내다 1968년 11월 1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 곽병도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2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라이선스를 별도로 명시하지 않은 문서는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문서의 기여자는 역사 탭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접두어의 N: - 나무위키 사용자, R: - 리그베다 위키의 사용자를 뜻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나무위키에서 동일한 문서의 역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