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굴사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목차
1. 개요 [편집]
2. 상세 [편집]
신라시대에 창건되어 현대까지 이어진 유서 깊은 절로, 전하는 바로는 6세기 신라시대 서역 인도에서 온 광유성인 일행이 창건했다고 한다. 현지[1]에서는 골굴암 시절부터 사투리로 '고꿀암'이라고 불렸다.
찾아가기 힘든 위치임에도 현대에는 템플 스테이로 한국인보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오히려 더 유명한 절. 골굴사에 가면 템플 스테이 중인 외국인을 쉬이 만날 수 있다. 백인, 흑인 관광객도 있지만 아시아계 외국인도 많다. 론리플래닛 한국편을 봐도 한국인 관광객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 골굴사를 비교적 상세하게 소개했다.
일반적으로 선무도(禪武道)로 알려져 있는 불교 무술 금강영관의 본원이 있는 절이기도 하다. 매일 오후 3시에[2][3] 대적광전(돌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표지판이 보이는 '큰법당')에서 무술 시범을 하는데 흔히 아는 소림사의 공연과 비슷한 느낌이다.
여타 산사들과 마찬가지로 이곳에도 약수가 있다. 나라를 구할 대장부가 나온다는 샘이 여럿 있었지만 일제강점기에 돌 또는 시멘트로 탑을 만들어 물길을 막아버렸고, 지금은 한 곳에서만 나온다나?[4]
찾아가기 힘든 위치임에도 현대에는 템플 스테이로 한국인보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오히려 더 유명한 절. 골굴사에 가면 템플 스테이 중인 외국인을 쉬이 만날 수 있다. 백인, 흑인 관광객도 있지만 아시아계 외국인도 많다. 론리플래닛 한국편을 봐도 한국인 관광객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 골굴사를 비교적 상세하게 소개했다.
일반적으로 선무도(禪武道)로 알려져 있는 불교 무술 금강영관의 본원이 있는 절이기도 하다. 매일 오후 3시에[2][3] 대적광전(돌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표지판이 보이는 '큰법당')에서 무술 시범을 하는데 흔히 아는 소림사의 공연과 비슷한 느낌이다.
여타 산사들과 마찬가지로 이곳에도 약수가 있다. 나라를 구할 대장부가 나온다는 샘이 여럿 있었지만 일제강점기에 돌 또는 시멘트로 탑을 만들어 물길을 막아버렸고, 지금은 한 곳에서만 나온다나?[4]
3. 보물 581호 경주 골굴암 마애여래좌상 [편집]
신라 때 거대한 암벽을 파내서 만든 12개의 인공석굴이 매우 가파른 길을 따라 이어져 있고, 꼭대기에 있는 4미터 높이의 경주 골굴암 마애여래좌상은 보물 제581호로 지정되었다. 올라가는 길에 작은 석굴이 계속 반복되며 꽈배기처럼 꼬인 암벽을 올라가는데 암벽 건너편은 간단한 철제 난간만 있는 낭떠러지의 반복이라서 굉장히 무섭다.
4. 주의할 점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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