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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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 남북조시대 북제의 마지막 황제 유주(幼主) 고항(高恆) [편집]
2. 高閌 [편집]
1097 ~ 1153
남송 명주(明州) 은현(鄞縣) 사람으로 자는 억숭(抑崇)이고 학자들은 식재선생(息齋先生)으로 불렀다.
시호는 헌민(憲敏)으로 송고종(高宗) 소흥(紹興) 원년(1131) 진사(進士)가 되어 비서성정자(秘書省正字)에 오르고 국자사업(國子司業)으로 옮겼다.
당시 태학(太學)이 생기자 경술(經術)을 중심으로 강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송의 학제(學制)는 대개 그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었다.
예부시랑(禮部侍郞)에 임명되었는데 진회(秦檜)가 그를 의심해 탄핵을 받아 균주지주(筠州知州)로 쫓겨났지만 나가지 않았다. 어려서 정이(程頤)의 학문을 종주로 했으며 뒤에 양시(楊時)에게 배웠다. 『춘추』를 정밀히 연구하여『춘추집주(春秋集注)』를 저술했다.
남송 명주(明州) 은현(鄞縣) 사람으로 자는 억숭(抑崇)이고 학자들은 식재선생(息齋先生)으로 불렀다.
시호는 헌민(憲敏)으로 송고종(高宗) 소흥(紹興) 원년(1131) 진사(進士)가 되어 비서성정자(秘書省正字)에 오르고 국자사업(國子司業)으로 옮겼다.
당시 태학(太學)이 생기자 경술(經術)을 중심으로 강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송의 학제(學制)는 대개 그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었다.
예부시랑(禮部侍郞)에 임명되었는데 진회(秦檜)가 그를 의심해 탄핵을 받아 균주지주(筠州知州)로 쫓겨났지만 나가지 않았다. 어려서 정이(程頤)의 학문을 종주로 했으며 뒤에 양시(楊時)에게 배웠다. 『춘추』를 정밀히 연구하여『춘추집주(春秋集注)』를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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