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사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1. 개요 [편집]
2. 역사 [편집]
681년(신문왕 1) 신라시대 승려인 의상(義湘)이 창건하여 이름을 고운사(高雲寺)라고 하였다. 그후 최치원(崔致遠)이 여지, 여사 두 승려와 함께 가허루(駕虛樓)와 우화루(羽化樓)를 짓고 고운사(孤雲寺)로 개칭하였다. 헌강왕 때에 도선(道詵)이 약사여래불과 석탑을 건립하였다.
고려시대인 948년(정종 3)에 중창하였고, 1018년(현종 9)에 들어 다시 중창하였다.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와 1695년(숙종 21)에 중수하였다. 그후 1835년(헌종 1)에 불탄 것을 재건하였고, 현대에 들어 1970년대에 건물 일부가 다시 소실된 사고가 있기도 했다. 이후로는 큰 사고 없이 현재에 이른다.
고려시대인 948년(정종 3)에 중창하였고, 1018년(현종 9)에 들어 다시 중창하였다.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와 1695년(숙종 21)에 중수하였다. 그후 1835년(헌종 1)에 불탄 것을 재건하였고, 현대에 들어 1970년대에 건물 일부가 다시 소실된 사고가 있기도 했다. 이후로는 큰 사고 없이 현재에 이른다.
3. 문화재 [편집]
경내의 국가 지정 중요 문화재로는 보물 제246호로 지정된 '의성 고운사 석조여래좌상'과 보물 제2078호로 지정된 '의성 고운사 연수전'이 있다. 이 외의 지방 문화재로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1호로 지정된 '고운사 가운루'가 있다.
4. 사건사고 [편집]
2019년 7월 당시 해당 사찰의 주지스님 자현에 대하여 문제시가 된 적이 있었다. 당시 이 자현스님에 대한 문제로 안동시 내부에서 시끄러웠던 적 있었는데, 해당 사안에 대해서 가장 먼저 직무정지(사유 : 폭력+성추문+공금횡령)가 된 적 있었다. 관련 영상. 이 다음 해에 8월 27일 자로 확정고지가 된 것은 공권정지 3년, 주지스님 직위 박탈, 변상금(약 2억4천 정도) 배상 부과를 받게 되었다.
물론 2020년 현재도 대체로 해당 사찰에 부정적인 반응이 많다.[1]문제는 조계종 본진 자체도...
물론 2020년 현재도 대체로 해당 사찰에 부정적인 반응이 많다.[1]
[1] 자현 스님 이전의 전 주지도 금전에 목을 맨 이미지였고, 대체로 주지스님을 목적으로 한 알력싸움까지 벌어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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