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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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한국의 공산주의자, 한국의 항일운동가.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고수복은 1911년생이며 함경남도 정평군 선덕면 선덕리 출신이다. 그녀는 정평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1년 9월 종방방직회사(鐘紡紡織會社) 경성제사공장(京城製絲工場)의 직공으로 입사했다. 1932년 1월 말 정길성(丁吉成), 김응룡(金應龍) 등과 협의하여 좌익노동조합준비회(左翼勞動組合準備會) 결성하기 위해 경성부내 각 공장으로 분담 활동을 하였으며, 3월 하순 경성부 팔판동에 거주하는 강응진(姜膺鎭)의 집에서 정길성, 김응룡, 권오경(權五敬)과 회합하여 노동조합을 조직하기 위한 준비단체인 좌익노동조합준비위원회(左翼勞動組合準備委員會)를 결성하고 선전부 책임을 맡았다.
1932년 9월, 고수복은 문태화(文泰和), 공원회(孔元檜), 이만규(異晩圭) 등이 조직한 적위대(赤衛隊)의 예하 기관 중 하나인 좌익노동조합준비위원회의 선전부 책임자로 활동했다. 그러나 10월 11일 공산당 재건 적위대 사건으로 동대문경찰서에 체포되었고, 10월 18일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으며, 1933년 7월 19일 예심에 회부되어 조사를 받다가 고문에 의해 후유증으로 중병에 걸리면서 병보석 처리되었다. 이후 경성부 연건동의 대학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받았지만 1933년 7월 28일 끝내 사망했다.
1932년 9월, 고수복은 문태화(文泰和), 공원회(孔元檜), 이만규(異晩圭) 등이 조직한 적위대(赤衛隊)의 예하 기관 중 하나인 좌익노동조합준비위원회의 선전부 책임자로 활동했다. 그러나 10월 11일 공산당 재건 적위대 사건으로 동대문경찰서에 체포되었고, 10월 18일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으며, 1933년 7월 19일 예심에 회부되어 조사를 받다가 고문에 의해 후유증으로 중병에 걸리면서 병보석 처리되었다. 이후 경성부 연건동의 대학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받았지만 1933년 7월 28일 끝내 사망했다.
3. 기타 [편집]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고수복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1932년 동대문경찰서에서 촬영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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