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복령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1. 개요 [편집]
11세기 후반의 탐라 성주이자 배융부위. 이전 성주인 유격장군 가량잉(加良仍)의 동복동생.
2. 생애 [편집]
선종 7년(1090) 형인 성주 가량잉이 죽은 뒤 성주의 작호를 세습했고, 탁라구당사(乇羅勾當使)가 고려 예빈성에 이를 보고한다. 예빈성에서는 구당사의 보고를 바탕으로 성주의 교체 사실과 함께 선종에게 옛 제도에 따라 부의품을 보낼 것을 아뢴다. 2년 뒤인 선종 9년(1092)에 고려에 방물을 바치는 탐라 성주가 의인(懿仁)으로 바뀐 것으로 미루어 그 전에 사망했을 것으로 보인다.
구당사가 탐라의 동향을 보고하고, 이를 통해 탐라 관련 업무를 맡아 본 관청은 '외국'의 사절을 접대하는 예빈성이었다. 외국인인 송 상인이나 흑수말갈에 연회를 베푼 자리에 탐라인이 포함되는 점 등과 함께 고려 초기에 탐라를 행정구역이 아닌 별개의 국가로 인식했다는 학설의 근거가 된다.
구당사가 탐라의 동향을 보고하고, 이를 통해 탐라 관련 업무를 맡아 본 관청은 '외국'의 사절을 접대하는 예빈성이었다. 외국인인 송 상인이나 흑수말갈에 연회를 베푼 자리에 탐라인이 포함되는 점 등과 함께 고려 초기에 탐라를 행정구역이 아닌 별개의 국가로 인식했다는 학설의 근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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