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보욱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1. 개요 [편집]
2. 상세 [편집]
고보욱은 924년에 남평의 제2대 군주였던 고종회의 아들이자, 제3대 군주였던 고보융의 아우로 태어났다. 후주로부터 검교태위 겸 형남의 절도부사로 임명되었고, 960년에 고보융이 병으로 죽으면서, 고보욱이 형남 절도사의 지위를 이었다.
그런데 고보욱은 날마다 기생을 부르는 등 향락에 빠졌고, 무의미한 토목공사를 일으켰기 때문에 민심이 고보욱에게서 멀어져갔다. 또한 고보욱은 정사도 제대로 돌보지 않아 관료들과도 사이가 벌어졌다. 그리고 형 고보융이 그에게 정사를 위임했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고보욱이 업무를 잘한 것도 아니었다.
이전에 고보욱의 아버지인 고종회가 고보욱을 너무 아낀 나머지[2] 고보욱이 안하무인에 군주로서는 실격인 성품으로 자라다보니, 형남의 관료나 민중 할 것 없이 고보욱을 보고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탄식했는데, 이것이 바로 만사휴의(萬事休矣)라는 고사성어의 유래가 되었다.
고보욱은 962년에 죽었으며, 그의 조카이자 고보융의 아들인 고계충이 형남 절도사의 지위를 이어받았다.
그런데 고보욱은 날마다 기생을 부르는 등 향락에 빠졌고, 무의미한 토목공사를 일으켰기 때문에 민심이 고보욱에게서 멀어져갔다. 또한 고보욱은 정사도 제대로 돌보지 않아 관료들과도 사이가 벌어졌다. 그리고 형 고보융이 그에게 정사를 위임했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고보욱이 업무를 잘한 것도 아니었다.
이전에 고보욱의 아버지인 고종회가 고보욱을 너무 아낀 나머지[2] 고보욱이 안하무인에 군주로서는 실격인 성품으로 자라다보니, 형남의 관료나 민중 할 것 없이 고보욱을 보고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탄식했는데, 이것이 바로 만사휴의(萬事休矣)라는 고사성어의 유래가 되었다.
고보욱은 962년에 죽었으며, 그의 조카이자 고보융의 아들인 고계충이 형남 절도사의 지위를 이어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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