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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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역사 [편집]
서진(西晉) 시절 영가의 난을 피해 마을이나 씨족단위로 뭉쳐 이주한 북중국인(한족)이라는 학설이 가장 유력하지만, 이들의 존재에 대해서는 아직 학계에서 정설이 성립되지 않았다. 객가족은 거의 전체가 명문의 후손이라고 주장하지만 솔직히 일부 명문 후손이 국가가 망하자 떠돌이가 되어 객가가 되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가장 가까운 대이동은 청나라 중기에 여러 자연재해로 인한 이동이 있으며, 청나라 말기에 발발한 아편전쟁 이후에 개항 항구의 일자리를 얻기 위해 이동한 자들도 객가라고 부른다. 손님이라는 뜻의 客이라는 명칭도 거기에서 비롯되었다. 덕분에 객가의 정체에 대한 연구는 꽤나 까다롭다.
이들은 토루라는 요새 같은 집을 지으며 거주했는데, 쫒겨나온 난민이라는 특성상 남을 못믿고 사나우며 폐쇄성이 강한데다 집단규모가 원체 커서 현지인들과 항상 무력충돌을 빚었는데, 1850년대 후반의 집단난투극인 계투(械鬪)에서는 수십만명의 사망자를 낸 적도 있다고 한다.
객가인들은 근현대 시기에 반란이나 혁명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지도부나 유명정치인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홍수전, 쑨원, 마오쩌둥, 덩샤오핑, 주더가 대표적인 예이며, 대만에서도 리덩후이, 마잉주, 차이잉원이 대표적인 객가인 또는 객가인 혼혈 출신으로 총통 자리에까지 올랐으며, 싱가포르의 국부인 리콴유와 그 아들인 리셴룽도 객가인 출신이다. 하지만 리콴유 부자나 홍수전 외의 인물들은 무조건 객가 출신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특히 중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인 쑨원에 대해선 지금도 학계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현대에는 장시 성, 푸젠 성, 광둥 성 등지에 거주하고 있으며, 대만이나 동남아시아 등지에도 많은 수가 이주하여 살고 있다. 대만에서는 인구의 10% 정도를 차지하며, 특히 서북쪽 지역에 많이 거주해 신주현·먀오리 등지에선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에도 많지는 앉지만 소수의 객가계들이 사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들은 토루라는 요새 같은 집을 지으며 거주했는데, 쫒겨나온 난민이라는 특성상 남을 못믿고 사나우며 폐쇄성이 강한데다 집단규모가 원체 커서 현지인들과 항상 무력충돌을 빚었는데, 1850년대 후반의 집단난투극인 계투(械鬪)에서는 수십만명의 사망자를 낸 적도 있다고 한다.
객가인들은 근현대 시기에 반란이나 혁명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지도부나 유명정치인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홍수전, 쑨원, 마오쩌둥, 덩샤오핑, 주더가 대표적인 예이며, 대만에서도 리덩후이, 마잉주, 차이잉원이 대표적인 객가인 또는 객가인 혼혈 출신으로 총통 자리에까지 올랐으며, 싱가포르의 국부인 리콴유와 그 아들인 리셴룽도 객가인 출신이다. 하지만 리콴유 부자나 홍수전 외의 인물들은 무조건 객가 출신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특히 중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인 쑨원에 대해선 지금도 학계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현대에는 장시 성, 푸젠 성, 광둥 성 등지에 거주하고 있으며, 대만이나 동남아시아 등지에도 많은 수가 이주하여 살고 있다. 대만에서는 인구의 10% 정도를 차지하며, 특히 서북쪽 지역에 많이 거주해 신주현·먀오리 등지에선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에도 많지는 앉지만 소수의 객가계들이 사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3. 언어 [편집]
4. 대중매체에서 취급 [편집]
5. 객가 출신 유명인물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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