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춘삼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1. 의병장 강춘삼 [편집]
성명 | 강춘삼(姜春三) |
생몰 | |
출생지 |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황해도 해주 출신 의병장. 1894년 동학당에 입당해 보부상 접주로 종사했으며, 동학 농민 혁명이 실패로 끝난 후에는 숨어지내다가 1907년 정미 7조약으로 대한제국군이 강제 해산되자 목천 부사 박정빈의 의병에 가담했다. 그는 박기섭 의진의 중대장인 심노술이 거느린 의병들과 더불어 평산군 서쪽부터 해주군 사이에 걸쳐서 일본군과 교전해 상당한 전과를 거뒀다. 그러다가 1909년 일제가 남한 대토벌 작전을 감행했을 때 대다수 의병대가 소멸되었지만, 그 만은 끝까지 일본군에 대적해 1910년 해주 근처 여묵 원야(餘默 原野)에서 일본군을 습격해 타격을 입혔고 그해 가을 해주 동촌 청단시 쟈라기 벌판에서 적군과 교전해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1913년 5월 일본 헌병대에게 급습을 받고 체포된 뒤 천단시 학곡(學谷)에서 총살되었다. 향년 55세의 나이로 작고했다.
대한민군 정부는 1990년 강춘삼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2. 3.1 운동 시위 참가자 강춘삼 [편집]
라이선스를 별도로 명시하지 않은 문서는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문서의 기여자는 역사 탭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접두어의 N: - 나무위키 사용자, R: - 리그베다 위키의 사용자를 뜻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나무위키에서 동일한 문서의 역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