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순희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성명 | 강순희(姜順熙) |
이명 | 강대연(姜大淵) |
본관 | |
생몰 | |
사망지 |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강순희는 1868년 10월 3일 충청도 제천현 읍내면 두학리(현 충청북도 제천시 두학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성품이 강직하고 충절과 기개가 있었다고 하며, 1895년에 을미사변이 벌어지고 단발령이 반포되자 이에 반감을 품고 유인석이 제천에서 일으킨 의병에 가담했다. 이후 유인석 의병대를 따라 종군하다가 고종이 의병 해산령을 내리자 자택에 돌아와 학문에 열중했다. 그러다가 1905년 11월 을사조약이 체결되면서 대한제국의 국권이 일제에게 넘어가자, 그는 1906년 9월 정운경(鄭雲慶) 의병대에 가담했지만 정운경이 원주진위대의 습격을 받고 체포되자 어쩔 수 없이 고향으로 돌아갔다.
1907년 7월 고종이 강제퇴위되고 정미7조약 체결로 대한제국군이 강제 해산되자, 그는 이강년 의병대에 가담해 문필(文筆)에 관한 일을 맡았다. 이후로 그는 이강년 의진과 함께 종군하면서 문사에 관한 모든 일을 담당하는 한편 전투에 참여하고 보고들은 바를 기록했다. 이것이 후에 이강년 의병장의 문집인 <운강선생창의일록(雲崗先生倡義日錄)>의 근간이 되었다. 그러나 이강년이 일본군에게 체포된 후 교수형에 처해지자, 그는 세상과 인연을 끊고 자택에 은거하여 지내다가 1929년 9월 19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강순희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907년 7월 고종이 강제퇴위되고 정미7조약 체결로 대한제국군이 강제 해산되자, 그는 이강년 의병대에 가담해 문필(文筆)에 관한 일을 맡았다. 이후로 그는 이강년 의진과 함께 종군하면서 문사에 관한 모든 일을 담당하는 한편 전투에 참여하고 보고들은 바를 기록했다. 이것이 후에 이강년 의병장의 문집인 <운강선생창의일록(雲崗先生倡義日錄)>의 근간이 되었다. 그러나 이강년이 일본군에게 체포된 후 교수형에 처해지자, 그는 세상과 인연을 끊고 자택에 은거하여 지내다가 1929년 9월 19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강순희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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