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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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강문주는 1879년 9월 28일 전라북도 옥구군 대야면 지경리에서 강치국(姜治國)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농사 일을 하면서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고, 당시 일본인 지주 오오꾸라(大倉)가 그의 총명함에 호감을 느껴 농장 사무실에서 근무하게 해줬다. 그는 10여 년간 그곳에서 근무하다가 일본인 주임과 소작권 이전 문제로 의견 대립을 벌이다가 그만두고 집에서 농부들에게 영농과 야학을 가르쳤다.
몇년 후, 오오꾸라의 권유를 받아들여 농장의 소작인을 관리하는 마름을 맡은 그는 소작인의 편의를 많이 봐줬다. 그러던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연통제의 옥구군 책임자 노춘만이 찾아와서 임시정부를 지원하는 활동을 도와줄 것을 권하자, 그는 이를 수락하고 극비리에 독립운동 자금을 송금했다. 그리고 1922년 의군부(義軍府)에 가입하고 독립자금 100원을 기부했다. 이후 마름 일을 신병을 핑계로 그만두고 소를 사서 기르면서 독립운동 자금을 극비리에 송금했다. 그러다가 1945년 3월 13일에 67세의 나이로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0년 강문주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몇년 후, 오오꾸라의 권유를 받아들여 농장의 소작인을 관리하는 마름을 맡은 그는 소작인의 편의를 많이 봐줬다. 그러던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연통제의 옥구군 책임자 노춘만이 찾아와서 임시정부를 지원하는 활동을 도와줄 것을 권하자, 그는 이를 수락하고 극비리에 독립운동 자금을 송금했다. 그리고 1922년 의군부(義軍府)에 가입하고 독립자금 100원을 기부했다. 이후 마름 일을 신병을 핑계로 그만두고 소를 사서 기르면서 독립운동 자금을 극비리에 송금했다. 그러다가 1945년 3월 13일에 67세의 나이로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0년 강문주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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