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맹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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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1458년(세조 4) 12월에 영의정이 된 정창손은 당시 모친상을 치르느라 정무를 수행하지 않았고 1459년(세조 5) 11월 6일에 강맹경이 영의정이 되었다. 같은 달 11일에 연회에서 바른말을 하여 파직되고 대신 좌의정 신숙주가 영의정이 되었다가 같은 달 15일에 강맹경이 다시 영의정이 되었다.
1461년에 병들어 죽자 세조가 크게 슬퍼하며 3일간 조정을 쉬었고, 강맹경을 치료했던 의원들을 약을 짓는데 정성을 들이지 않았다 하여 벌주었다. 이후 충성스럽고 신의있으며, 예문에 의거하였다 하여 문, 의로 말미암아 구원하였다고 경을 붙여 문경이라 시호를 내렸다. 세조는 강맹경의 죽음에 상당히 슬퍼하는 기색을 보였는데, 유족에게 곡식과 종이를 별도로 내리는가 하면, 강맹경의 동생인 밀양부사 강숙경을 불러와 호상하게 하기도 하였고 강맹경을 위해 7일이나 고기를 먹지 않고 소선하겠다고 하기도 하였다. 이에 우참찬 성봉조와 병조판서 한명회가 7일은 너무 길고 3일만 소선할 것을 청하자 따랐다.
1461년에 병들어 죽자 세조가 크게 슬퍼하며 3일간 조정을 쉬었고, 강맹경을 치료했던 의원들을 약을 짓는데 정성을 들이지 않았다 하여 벌주었다. 이후 충성스럽고 신의있으며, 예문에 의거하였다 하여 문, 의로 말미암아 구원하였다고 경을 붙여 문경이라 시호를 내렸다. 세조는 강맹경의 죽음에 상당히 슬퍼하는 기색을 보였는데, 유족에게 곡식과 종이를 별도로 내리는가 하면, 강맹경의 동생인 밀양부사 강숙경을 불러와 호상하게 하기도 하였고 강맹경을 위해 7일이나 고기를 먹지 않고 소선하겠다고 하기도 하였다. 이에 우참찬 성봉조와 병조판서 한명회가 7일은 너무 길고 3일만 소선할 것을 청하자 따랐다.
3. 대중매체에서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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