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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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내용 [편집]
대자 1.4X1.6 cm, 소자 1.4X0.8 cm
세종대왕이 기존에 만들었던 경자자(庚子字)는 자체가 너무 가늘고 빽빽하여 보기가 어렵다며 1434년 갑인년(甲寅年)에 좀 더 큰 활자를 새로 만들라고 명하여 제작된 금속활자이다. 주요 제작자는 장영실과 이순지, 진양대군 등이다.
글자체 자본(字本)은 중국 성인들의 고서들인 효순사실(孝順事實), 위선음즐(爲善陰騭), 논어(論語)에서 따왔고, 이 3종의 책에 없는 대부분 글자체들은 진양대군 유(晉陽大君 瑈, 훗날의 세조)가 쓴 글로 보충하였다. 다 합쳐서 총 20만 자를 주조하였다.
처음으로 대나무나 나무 조각으로 빈틈을 메우는 정교하고 튼튼한 조립식 인판틀을 채용하였으며, 기존 경자자의 배 이상인 하루에 40여 지를 간행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또한 이 활자를 바탕으로 훗날 세조가 즉위하자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활자로도 만들었따고 전한다. 이때는 만든 해와 자체가 갑인자와 전혀 다르므로 '갑인자병용한글활자' 또는 처음으로 찍은 책의 이름을 따서 '월인석보한글자'라고 부른다.
이후 갑인자는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총 6번 개주하면서 조선왕조가 멸망할 때까지 사용되었다. 갑인자로 인쇄된 주요 책으로는 신편음점성리군서구해(新編音點性理群書句解), 근사록(近思錄), 사마방목(司馬榜目), 경국대전 권3(經國大典 卷三),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소), 자치통감강목 권12·27·37·42(資治通鑑綱目 卷12·27·37·42),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 등이 있으며, 조선 금속활자를 대표하는 자료로 인정받는다.
세종대왕이 기존에 만들었던 경자자(庚子字)는 자체가 너무 가늘고 빽빽하여 보기가 어렵다며 1434년 갑인년(甲寅年)에 좀 더 큰 활자를 새로 만들라고 명하여 제작된 금속활자이다. 주요 제작자는 장영실과 이순지, 진양대군 등이다.
글자체 자본(字本)은 중국 성인들의 고서들인 효순사실(孝順事實), 위선음즐(爲善陰騭), 논어(論語)에서 따왔고, 이 3종의 책에 없는 대부분 글자체들은 진양대군 유(晉陽大君 瑈, 훗날의 세조)가 쓴 글로 보충하였다. 다 합쳐서 총 20만 자를 주조하였다.
처음으로 대나무나 나무 조각으로 빈틈을 메우는 정교하고 튼튼한 조립식 인판틀을 채용하였으며, 기존 경자자의 배 이상인 하루에 40여 지를 간행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또한 이 활자를 바탕으로 훗날 세조가 즉위하자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활자로도 만들었따고 전한다. 이때는 만든 해와 자체가 갑인자와 전혀 다르므로 '갑인자병용한글활자' 또는 처음으로 찍은 책의 이름을 따서 '월인석보한글자'라고 부른다.
이후 갑인자는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총 6번 개주하면서 조선왕조가 멸망할 때까지 사용되었다. 갑인자로 인쇄된 주요 책으로는 신편음점성리군서구해(新編音點性理群書句解), 근사록(近思錄), 사마방목(司馬榜目), 경국대전 권3(經國大典 卷三),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소), 자치통감강목 권12·27·37·42(資治通鑑綱目 卷12·27·37·42),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 등이 있으며, 조선 금속활자를 대표하는 자료로 인정받는다.
3. 바깥고리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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