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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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이 설계국 전투기 계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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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원 [편집]
Су-7, Су-7Б
Su-7BKL 제원 분류 : 단발단좌 터보제트 전투기 전장 : 16.80m 전폭 : 9.31m 전고 : 4.99m 주익면적 : 34m² 공허중량 : 8937kg 최대이륙중량 : 13,570kg 엔진 : 률카 AL-7F-1 후연소기 장착 터보제트 1기, 후연소기 작동 시 추력 94.1kN 성능 최대속도 : 2,150km/h (1,160 kn, 1,335 mph) 항속거리 : 1,650 km (890 nmi, 1,025 mi) 실용상승한도 : 17,600 m (57,740 ft) 상승률 : 160 m/s (31,500 ft/min) 익면하중 : 434.8 kg/m² (89.05 lb/ft²) 추력대 중량비 : 0.71 무장 기총 : 30mm NR-30 기관포 2문 (주익 내측 2문(1문당 탄약 80발)) 하드포인트 : 주익 하면 4개소, 동체 하면 2개소 최대 2,000kg 폭장 가능(S-5 무유도 로켓, 8U69 5킬로톤 핵폭탄, 600리터 혹은 950리터 보조연료탱크, 250kg 혹은 500kg 통상폭탄 등) |
2. 소개 [편집]
Su-7은 수호이 설계국(Sukhoi OKB)이 재건된 이후 설계 및 실전 배치한 최초의 전투기이다. Su-7은 60도에 달하는 급격한 후퇴각을 자랑하는 후퇴익과 쇼크콘을 탑재한 초음속 전투기로 당초 최전선의 저공에서 도그파이팅을 위하여 설계되었으나 성능상의 문제가 발견되어 소폭 개량을 거쳐 전투폭격기로 전용되어 개발 및 실전 배치되었다. Su-7은 소련 공군이 IL-2의 후속기로 개발해서 사용하였던 IL-10을 대체하고 1960년대 초반 소련 공군의 주력 전투폭격기로 사용되었으나 적은 무장탑재량, 짧은 항속거리 등의 문제로 인하여 운용상의 문제가 있었다.
3. 개발 및 성능 [편집]
1953년 스탈린 사후 그 해 여름 수호이 설계국이 재건되었다[1]. 수호이 설계국은 최전선에서 사용할 후퇴익 전투기를 설계했고 사내 번호 S-1이라 명명되었다[2]. S-1은 60도의 급한 후퇴각이 적용된 후퇴익과 쇼크콘에 강력한 률카 AL-7을 탑재한 전투기로 소련 최초의 전체 가동식 수평미익, 가동식 쇼크콘을 탑재한 본격적인 초음속 전투기가 될 예정이었다.
S-1은 1955년 9월 1일에 최초로 비행했으며 1956년 4월 소련의 항공기 속도 기록을 갱신하게 되었다. 당시 기록은 2,170 km/h (1,170 kn, 1,350 mph, Mach 2.04)였다. 프로토타입은 N-37 37mm 기관포 3문을 기본으로 장착하고 동체 하면의 하드포인트에 S-5 무유도 로켓을 장착할 예정이었다. 뒤이어 공력적인 측면을 개선한 두 번째 프로토타입 S-2를 만들었다. 그러나 첫 번째 프로토타입인 S-1은 엔진 문제로 1956년 9월 1일 추락하였고 탑승하고 있던 시험 조종사마저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일련의 문제로 인하여 첫 번째 양산형인 Su-7은 1957년부터 1960년까지 132기만이 생산되었고 1959년에 실전 배치되었다. 하지만 소련 공군은 Su-7이 전투기로서의 성능에 미달한다고 판단하고 1958년 7월 31일부로 Su-7에 지상공격 임무를 부여하기로 결정하였고 그에 맞는 개량형을 준비하도록 명령하였다. 지상공격에 맞는 개량형은 퇴역 중이던 IL-10을 대체할 예정이었다. 이에 따라 수호이 설계국이 재설계한 프로토타입인 S-22는 기존의 전투기형과 비교해 고속 비행을 위하여 동체를 강화하고 저공 비행 능력 강화에 중점을 두었다. 본 프로토타입은 1959년 3월에 초도비행을 마쳤고 1961년 Su-7B라는 이름으로 배치된 후 생산된 대부분의 기체가 지상 공격기로 운용되었다.
상술하였다시피 Su-7은 급한 후퇴각을 갖춘 얇은 주익을 가지고 있었다. 이로 인하여 착륙 속도는 매우 빨랐으며 착륙시 받음각이 큰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이는 조종사의 시야를 제한해 이착륙 시 지면에 충돌할 가능성이 높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게다가 불량한 전면시야와 ILS의 부재는 이착륙 난이도를 더욱 키우기에 충분하였다. 이로 인하여 날씨가 불량하거나 비행장의 노면 상태가 좋지 못할 경우 임무에 나서기 어려운 결점이 있었다. 수호이 설계국은 이런 문제점들을 보완하기 위하여 고양력 장치를 주익에 추가하는 등의 실험을 하였으나 성과는 미진하였고 결국 JATO 기능을 추가시켜 보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S-1은 1955년 9월 1일에 최초로 비행했으며 1956년 4월 소련의 항공기 속도 기록을 갱신하게 되었다. 당시 기록은 2,170 km/h (1,170 kn, 1,350 mph, Mach 2.04)였다. 프로토타입은 N-37 37mm 기관포 3문을 기본으로 장착하고 동체 하면의 하드포인트에 S-5 무유도 로켓을 장착할 예정이었다. 뒤이어 공력적인 측면을 개선한 두 번째 프로토타입 S-2를 만들었다. 그러나 첫 번째 프로토타입인 S-1은 엔진 문제로 1956년 9월 1일 추락하였고 탑승하고 있던 시험 조종사마저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일련의 문제로 인하여 첫 번째 양산형인 Su-7은 1957년부터 1960년까지 132기만이 생산되었고 1959년에 실전 배치되었다. 하지만 소련 공군은 Su-7이 전투기로서의 성능에 미달한다고 판단하고 1958년 7월 31일부로 Su-7에 지상공격 임무를 부여하기로 결정하였고 그에 맞는 개량형을 준비하도록 명령하였다. 지상공격에 맞는 개량형은 퇴역 중이던 IL-10을 대체할 예정이었다. 이에 따라 수호이 설계국이 재설계한 프로토타입인 S-22는 기존의 전투기형과 비교해 고속 비행을 위하여 동체를 강화하고 저공 비행 능력 강화에 중점을 두었다. 본 프로토타입은 1959년 3월에 초도비행을 마쳤고 1961년 Su-7B라는 이름으로 배치된 후 생산된 대부분의 기체가 지상 공격기로 운용되었다.
상술하였다시피 Su-7은 급한 후퇴각을 갖춘 얇은 주익을 가지고 있었다. 이로 인하여 착륙 속도는 매우 빨랐으며 착륙시 받음각이 큰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이는 조종사의 시야를 제한해 이착륙 시 지면에 충돌할 가능성이 높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게다가 불량한 전면시야와 ILS의 부재는 이착륙 난이도를 더욱 키우기에 충분하였다. 이로 인하여 날씨가 불량하거나 비행장의 노면 상태가 좋지 못할 경우 임무에 나서기 어려운 결점이 있었다. 수호이 설계국은 이런 문제점들을 보완하기 위하여 고양력 장치를 주익에 추가하는 등의 실험을 하였으나 성과는 미진하였고 결국 JATO 기능을 추가시켜 보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4. 파생형 [편집]
5. 운용국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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