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특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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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리그는 한국의 4대 프로 스포츠 리그 중 유일하게 참가 구단의 약칭에 모기업명이 아닌 연고지명을 전면에 내세우는 리그다. 이를테면 야구는 SK, 농구는 모비스, 배구는 삼성화재 등 팀명이 모기업의 상호명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언론은 물론 팬들조차도 이 팀들을 각각 인천 와이번스, 울산 피버스, 대전 블루팡스 등 지명을 기준으로 부르지 않는다. 이에 비해 K리그는 전북(전북 현대), 수원(수원 삼성) 등의 예시처럼 연고지명만 사용하거나 모기업명을 포함시킬 때도 반드시 연고지명의 뒤에 붙여서 사용하는 등 연고지명을 고집한다. 심지어는 서울(FC 서울)처럼 모기업이 있음에도 구단명에 기업명이 없는 경우도 있다.[3] 이는 축구라는 종목 자체가 어느 국가 가릴 것 없이 연고지와 구단 간의 연대감이 매우 강하고, 팬들은 이 관계에 스폰서(모기업)가 침범하는 것을 상당히 경계하거나, 심하게는 혐오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는 주로 축구 역사가 오래된 유럽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실 한국의 다른 프로 스포츠나 일본 프로야구 정도를 제외하면, 모기업명을 팀의 전면에 내세우는 경우는 유럽에서는 매우 드문 편이다.[4]
- 리그 참가팀 중 기업구단과 시민구단의 비율은 약 50:50 정도다. 시민구단의 경우, 2000년대와 2010년대 프런트의 비리나 지자체의 정치적 개입 등 각종 사건사고에 많이 휘말렸고, 자금력도 상대적으로 약해 만년 하위권 구단이라는 이미지와 함께 부정적인 인식이 많았다. 하지만 2010년대 말에 들어서는 과거 대대강광이라는 약칭으로 불렸던 시민구단 4약체 대전, 대구, 강원, 광주가 모두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장하였다. 대구의 경우, 2018년 FA컵 우승과 2019년 ACL 참가, 스타 조현우의 탄생, 축구전용구장 완공으로 평균관중 수 1만 명이 넘는 인기 구단으로 도약했다. 그리고 강원의 경우, 김병수 감독의 축구철학 병수볼 아래 많은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모여들었고, 2002 월드컵의 영웅 이영표 前 선수가 대표이사로 선임되면서 많은 축구 팬들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광주의 경우, 광덕중-금호고로 이어지는 광주의 유스 풀은 호남권 최고로 정평이 나 있으며, 매년 유소년 무대에서 혜성 같은 선수들을 리그로 배출해내고 있다. 대전의 경우, 하나금융그룹에 인수되어 기업구단으로 전환되면서 1부, 2부 리그를 통틀어 가장 많은 투자를 하는 팀들 중 하나가 되었다.
- 출범 당시에는 유럽과 같은 자유계약 제도를 채택했지만, 1987년부터 축구에는 어울리지 않는 드래프트 제도가 도입되었다. 일명 김종부법 때문인데, 당시 한창 주가를 올리던 김종부를 잡기 위해 현대 호랑이가 김종부가 재학 중인 고려대에 상당한 지원을 했다. 결국 김종부는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학교 측의 설득으로 현대에 입단하기로 가계약 한다. 하지만 김종부는 대우 로얄즈 행을 원했기 때문에 이 계약이 무효라고 주장했고, 이 사건으로 인해 고려대 축구부에서 제명 당하고 축구협회 선수 등록이 말소 당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는다. 그러나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활약한 후 축구협회가 현행 선수 등록규정을 개정해주면서 가까스로 대우에 입단할 길이 트였다. 그러자 격분한 현대 호랑이가 구단 해체 선언이라는 초강수를 들고 나왔고, 결국 제3의 구단인 포항제철 아톰즈에 입단하기로 타협함으로써 흔히 말하는 김종부 파동은 일단락 되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K리그에 드래프트 제도가 도입되고 만다. 그 후, 2002 한국/일본 월드컵 개최가 확정되자, K리그에 드래프트 같은 구시대적인 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철폐 여론이 불었고, 결국 2002년 다시 자유계약 제도로 바뀌었다. 그러나 2005년 박주영 파동으로 인해 다시 드래프트 제도가 도입되었고, 이후 드래프트 제도가 이어졌다. 그러다가 2013년부터 부분 자유계약 제도가 도입되었고, 2016년부터 드래프트 제도가 폐지되면서 완전히 자유계약 제도로 전환되었다. 2021년부터는 K리그에 보스만 룰도 도입되었다.
-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인프라가 크게 확충되었고 축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4개 팀이 새로 창단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전체적인 리그의 모습을 봐도 2010년 시점에서, 10년 전인 2000년의 리그 모습과 지금의 리그 모습을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 그러나 단기간에 많은 발전을 보였음에도 아직까지 미흡한 점이 많다. 하지만 그 미흡한 점들도 사람들이 해외 축구를 손쉽게 접하면서 K리그의 나아진 모습들을 평가절하 하는 측면도 없잖다. 한마디로, 빠르게 많이 발전했지만 사람들의 성에 차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사람들의 눈높이가 예전보다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유럽 축구에 익숙한 사람들은 K리그에 이렇다 할 빅 클럽이 없고, 다 특색없는 고만고만한 팀들만 있다며 비난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K리그가 타 리그에 비해 어느 정도 평준화 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런 예측 불가한 승부가 스포츠의 본질적인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에 무조건 비판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오히려 순위가 고착화되어 있는데도 인기있는 해외 리그들을 보면 어째서 인기있는 것인지 의아하게 느껴진다. 다만 2010년대 후반 들어서는 전북이 확고한 우승권 팀으로 자리매김 하고, 다른 팀들이 전북과 우승 경쟁을 하는 구도로 변화되었다.
- K리그도 30여 년 역사가 흘러 어느 정도 성숙기에 접어들다 보니, 리그를 주도하는 여섯 팀들이 정착되었다. 서울, 수원, 포항, 울산, 성남, 전북 등은 높은 리그 내 순위와 수많은 우승컵들을 바탕으로 국내 축구팬들로부터 K리그의 빅6라 불리고 있다. 또한 빅6 클럽들은 K리그 우승 뿐만 아니라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으로 다른 아시아 리그에서도 명문 클럽으로 인정받고 있다. 특이한 점은 포항의 경우 모기업인 포스코의 철강 사업으로, 뜬금없이 그리스에서 유명세가 상당하다고 한다. 재정박살 전 그리스가 조선 산업이 발달해 이쪽 분야의 교류가 컸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 많은 팀들이 깊은 역사와 다양한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다. 더비 매치 항목에서 볼 수 있듯이 팀별로 여러 경기들이 많으며 잘 찾아봐야 한다. 모든 리그가 그렇지만 중립적으로 보면 별로 흥미가 생기지 않을 수 있다. 응원할 팀을 정해 놓고 그 팀을 중심으로 리그를 봐야 그 안에서 흥미를 느낄 수 있다. 응원팀이 확실하다면 동네 조기축구나 학교 체육 대회조차 미칠 듯한 감정 이입과 열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축구이기도 하다. 물론 축구를 중립적으로 보는 사람들에게는 유럽 4대 리그에 비해 K리그의 경기 스타일이 조금 뻑뻑해 보일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또한 축구 스타일 중 하나일 뿐이고, 그렇게 투박하다고 까이는 한국 축구가 어떻게 수십 년간 아시아의 최정상 자리를 지켜올 수 있었겠는가. 일단 축구는 이기는 것이 우선이지 무턱대고 스타일을 바꾼다고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다.
- K리그는 피지컬적인 면에 있어서는 아시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2020년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울산 현대가 우승할 당시, 울산의 피지컬 코치였던 츠코시 토모오는 2021년 2월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과 일본의 피지컬 차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선 일본 선수와 한국 선수는 체격이 다릅니다. 선천적인 부분에서 한국 선수들이 키가 더 커요. 공격수나 센터백은 190cm 정도가 기본이라, 월드 클래스 기준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더욱이 체중에 있어서도 한국 선수들 쪽이 더 무겁습니다. 그건 음식 문화가 크게 영향을 주는 거겠죠. 섭취하는 단백질 양이 일본인에 비해 확실히 다릅니다. 월드컵에 나서는 나라 중에, 일본 선수의 BMI 지수는 항상 하위 그룹에 들어가지만, 역시 한국 선수들은 그 점에 있어서도 세계 레벨에 걸맞는 선수들이 많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한국 선수의 점프력은 일본 선수와 크게 다릅니다. J리그 선수와 K리그 선수의 서전트 점프 기록을 비교해 보니, 한국 선수들이 평균 3cm 더 높이 뛴다는 데이터가 나왔습니다. 이 차이는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후천적인 것, 즉 트레이닝의 차이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어릴 때부터 줄넘기를 엄청 합니다. 일본 중고등학생들이 런닝 계열 훈련을 엄청 하듯이, 한국에서는 점핑 계열 훈련이 많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고 설명하며 선천적인 이점과 트레이닝의 차이가 이러한 장점을 강화시킨다고 이야기했다.
- 2013년부터 만 23세 이하 국내 선수 의무 등록 규정이 신설되었다. 유소년 시스템을 한층 강화시키기 위해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신설한 규정이다. 규정은 만 23세 이하 국내 선수가 출전 선수 명단에 최소 1명은 포함되도록 의무화했다.
- 2013년에는 의무 등록 선수의 수가 1명이었고, 2014년에는 2명으로 늘어났으며, 2015년부터는 2명 의무 등록 및 1명 선발출전으로 확대되었다. 단, 군경 팀은 적용받지 않으며 군경 팀과 경기시 그 상대 팀도 위 사항에 한시적으로 적용받지 아니한다. 군경 팀 선수는 9월 전역일 이후 원소속 팀을 상대로 경기 출전이 가능하다. 또한 23세 이하의 국내 선수가 각급 대표 팀 선수로 선발될 경우, 소집 기간에 개최되는 경기에서 해당 클럽과 그 상대 팀은 차출된 선수의 인원 수만큼 출전 선수 의무 등록 규정에 적용받지 아니한다. 차출된 선수가 동일하지 않을 경우 많은 팀을 기준으로 한다.
- 만 22세 이하 국내 선수 의무 등록 및 선발출전 규정을 지키지 않을 경우, 다음과 같은 불이익을 받게 된다. 만 22세 이하 국내 선수 의무 등록 수가 2명에 미치지 못한다면, 미치지 못하는 수만큼 출전 선수 명단의 수를 차감한다. 즉, 기존의 18명 명단에서 17명 혹은 16명 명단으로 줄어드는 것이다. 그리고 만 22세 이하 국내 선수 의무 선발출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선수 교체 가능인원을 1명 차감한다. 즉, 기존의 3명 선수 교체에서 2명 선수 교체로 줄어드는 것이다.
- K리그의 수준에 대해서는 개개인마다 평가가 조금씩 다른 편이다. 단,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제3자 위치에서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의 외국인 감독들이 아예 유럽에 못 들어올 정도는 아닌데, 그렇다고 완전히 들어올 수 있다고는 할 수 없다고 평했다. K리그에서 매우 잘하는 선수들이 이재성(2. 분데스리가)이나 권창훈(분데스리가)처럼 1~2부 리그에 가서 팀의 탄탄한 주전 역할을 하는 경우가 대다수고, 윤일록(리그앙)처럼 겨울 이적시장에서 1부 리그 중위권 팀의 즉시 전력감으로 보강되어 나름의 출장 기회를 보장 받는 경우도 있다. 국대급이 아닌 중간 정도 되는 선수들도 3부 리그까지는 안 가는 걸 보면[5], 대략 K리그의 수준은 빅리그의 2부 리그 혹은 UEFA 리그 랭킹 10위권의 1부 리그 정도로 평가된다.
- K리그는 유스 시스템이 잘 뿌리내린 편에 속하는 리그로 이야기된다. 자본력에서 중국이나 중동 국가들과 경쟁하기 힘든 현실상, 꾸준히 유망주들을 키워 리그로 배출해 내는 시스템을 갖추려 대한축구협회와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유스 시스템의 롤 모델로는 네덜란드 리그 에레디비시의 아약스나 페예노르트를 많이 참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포항과 울산은 이미 유스 명가로 소문난 구단들이며, 서울과 수원도 유스 시스템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유스 풀이 빈약하다는 이야길 들어왔던 전북도 유스 시스템에 많은 투자를 하고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K리그1에서 K리그2로 강등 당하는 아픔을 겪었던 부산이나 광주가 2019년 다시 승격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각 구단의 유스 시스템 안에서 착실하게 성장한 선수들이 리그에 나와 주전 자원으로서 제 기량을 다해줬기 때문이었다. 2020 AFC U-23 챔피언십에서 대한민국 U-23 국가대표팀이 더블 스쿼드를 사용하며 전승 우승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대표팀 선수 대부분을 차지했던 K리거들과 K리그의 유스에서 잘 자라난 선수들의 힘이 바탕에 있었다.
- K리그 구단 산하 유소년 선수는 소속 구단과의 우선 지명 계약을 통해 입단하는 것이 원칙이다. 구단은 우선 지명 계약을 원하는 산하 유소년 선수의 이름이 담긴 우선 지명 선수 명단을 한국프로축구연맹에 제출한다. 그리고 구단은 산하 유소년 선수에게 계약금이 있는 우선 지명 계약과 계약금이 없는 우선 지명 계약 두 가지 종류를 제안할 수 있다. 계약금이 있는 우선 지명 계약은 '계약금 최고 1억 5,000만 원 + 계약기간 5년 + 기본급 3,600만 원'이고, 계약금이 없는 우선 지명 계약은 '계약기간 3~5년 + 기본급 2,400~3,600만 원'이다. 소속 구단과 우선 지명 계약이 되지 않은 유소년 선수들은 자유 선발 신분이 되며, 소속 구단과 관계 없이 모든 구단과 자유 선발 계약을 할 수 있다. 모든 구단은 자유 선발 신분의 신인 선수에게 계약금이 있는 자유 선발 계약과 계약금이 없는 자유 선발 계약 두 가지 종류를 제안할 수 있다. 계약금이 있는 자유 선발 계약은 '계약금 최고 1억 5,000만 원 + 계약기간 5년 + 기본급 3,600만 원'의 조건으로 3명과 계약할 수 있고, 계약금이 없는 자유 선발 계약은 '계약기간 5개월~5년 + 기본급 2,400~3,600만 원'의 조건으로 인원 수에 제한 없이 계약할 수 있다. 구단의 산하 유소년 선수에 대한 우선 지명의 효력은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우선 지명 선수 명단 공시일부터 3년이 경과한 날이 속하는 해의 말일까지 유효하다. 이 기간 중 국내 아마추어 리그 및 해외 프로/아마추어 리그 등록 기간, 대학교 휴학 기간, 병역 복무 기간이 포함되어 있다면 해당 기간은 경과 기간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K리그 구단 산하 유소년 선수에게는 몇 가지 의무 조항이 따라 붙는데, 구단 산하 유소년 선수를 원소속 구단의 서면 동의 없이 이적 및 등록시킬 수 없으며, 유소년 선수가 자신이 속한 구단을 탈퇴할 경우 구단에 훈련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 K리그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근간을 이루는 리그이기도 하다. 2018 러시아 월드컵 국가대표팀 출전 선수 명단을 살펴보면, 출전 선수 명단 23명 중 12명이 K리거였으며, 독일을 격침시킨 카잔의 기적 당시 출장 선수 14명 중 8명이 K리거였다.
- 상무 축구단은 국군체육부대에서 모집하는 국군 대표 운동선수들로 구성된 축구단이다. 병역 복무를 체육부대에서 할 수 있다는 장점과 다른 대체 복무원인 경찰 축구단이 해체됐다는 여파 때문에, 모집 시기마다 많은 지원자가 몰리고 많은 탈락자가 발생하고 있다. 상무 축구단의 지원 자격은 우선 병무청 주관 병역판정 신체검사를 받아 현역병 입영 대상자여야 하며[7], 한국프로축구연맹에 등록된 만 27세[8] 이하의 신체등급 3등급 이상[9]인 자이다. 지원 자격이 되는 자는 서류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데, 서류 심사에서는 '최근 3년간 출전 경기 횟수와 실적', '최근 3년간 국가 대표나 연령별 대표, 대학 대표 경력'[10], '건강 상태', '신원과 최종 학력', '생활기록부' 등을 확인한다. 서류 심사는 지원자가 국군을 대표하는 선수가 될 수 있는가를 확인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탈락자의 수는 적다. 서류 심사를 통과한 지원자는 3일간 체력 측정/신체 및 인성 검사를 받게 된다. 체력 측정 종목은 50m 달리기, 왕복 달리기, 윗몸 일으키기, 요요 테스트, 배근력 측정 등이다. 체력 측정/신체 및 인성 검사에서 통과한 지원자는 최종 합격자가 된다. 하지만 결국 최종 합격자 수는 현재 상무 축구단 결원 수 만큼이기 때문에, 서류 심사 합격자 중 적게는 1/2 많게는 1/4 가량만 최종 합격하게 된다. 최종 합격자는 합격자 발표일로부터 약 2주 후 육군 훈련소에 입소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게 된다. 국군체육부대는 현역 복무자 중 올림픽 대회 3위 이상 혹은 아시아 대회 1위 입상 시 보충역으로 전환해주는 특전도 제공하고 있다.
- 모든 팀들의 경기에서 불문율 같은 것이 하나 있다. 전/후반 시작 전 양 팀 선수들은 한 데 모여 기합을 외치고 자기 포지션으로 향하는데, 골키퍼는 필연적으로 골대 뒤에 자리하는 서포터즈와 얼굴을 마주치게 된다. 이때 골키퍼는 설령 그 서포터즈가 자기 팀의 서포터즈가 아닌 상대 팀의 서포터즈라 하더라도 최소한 목례나 박수 정도의 간단한 인사라도 하는 것이 예의다. 팬들도 좋은 경기를 해보자는 의미에서 이에 같이 화답해준다. 만약 골키퍼가 이를 하지 않는다면, 크게 문제시 하진 않겠지만 만일의 경우 야유를 들을 수도 있다.
[1] 사실 K리그가 KBO 리그보다 먼저 만들어질 수도 있었다. 1981년 5월에 열린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국민정서와 여가선용을 위한 3S정책의 일환으로 프로 스포츠 창설 지시가 떨어졌다. 청와대 비서관은 야구협회와 축구협회에 프로화 검토를 의뢰하게 되었는데, 대한축구협회에서는 운동장 야간조명 설치 등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고 보고한 반면, 대한야구협회 전무를 지낸 이용일과 운영부장 출신 이호헌이 가세하여 수립한 야구 프로화 계획서에서는 정부의 지원금 한 푼 없이도(=대기업을 등쳐먹으면 된다) 프로화가 가능하다는 골자의 내용으로 보고하여 청와대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결국 청와대는 우선 프로야구부터 출범시키기로 결정하였고, 프로축구는 프로야구 후순위로 밀리게 됐다.[2] 여담으로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이용일과 함께 프로야구리그를 준비했던 이진희 MBC 사장이 한국프로야구 준비 보고서를 전두환에게 제출하자 전두환이 깜짝 놀랐다. 이진희 사장이 "각하 뭐가 잘못됐습니까?"라고 묻자, 전두환 曰 "뭐야, 야구야? 난 축구인줄 알았지."라고 했다고 한다.[3] 다만 서울과 제주의 경우 둘다 연고이전을 했기 때문에 모기업 이미지에 해를 끼칠 것을 우려해 제외한 것이다.[4] 바이어 04 레버쿠젠(바이엘), PSV 에인트호번(필립스), FC 레드불 잘츠부르크(레드불), RB 라이프치히(레드불), FC 카를 차이스 예나(자이스) 정도만 존재한다. 특히 레드불의 경우, 자본주의적인 구단 운영 방식 때문에 축구 문화에 보수적이기로 소문난 독일에서 "돈독이 올랐다"는 비난과 함께 RB 라이프치히는 다른 팀 팬들에게 빈축을 사고 있다고 한다.[5] 가는 선수들도 K리그에서 가기보다는 현지에서 기회를 찾아서 돌아다니는 경우다.[6] 안영학은 조선적, 정대세는 대한민국 국적, 안병준은 조선적이었다가 북한 국적 취득.[7] 현역병 입영 대상자가 되지 못할 경우 보충역으로 입대하거나 병역 면제 판정을 받을 수 있다.[8] 접수 기간이 속하는 해의 말일 기준.[9] 단, 신장 및 체중에 의해 신체등급이 4등급으로 측정된 경우 예외적으로 이를 인정한다.[10] 외국 경력은 인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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