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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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요2. 제원3. 실전4. 둘러보기

1. 개요 [편집]

제식 명칭
97식 경폭격기 (九七式軽爆撃機(きゅうななしきけいばくげきき))
제식 기호
키30 (キ30) / Ki-30
영문명
Japanese Army Type 97 Light bomber Mitsubishi Ki-30
앤(Ann)

일본 육군항공대의 Ki-30 97식 경폭격기는 미쓰비시 Ki-2 93식 경폭격기 후계기로 1936 ~ 1938년 개발되었다. 개발 당시 카와사키사의 Ki-32 98식 경폭격기와 경합했으며[1] 둘 다 제식으로 채용되어 양산됐다. Ki-30이 먼저 채용되었지만 생산수는 Ki-32에 밀렸다.[2] 1942년 말에 퇴역했으며 후계기로는 Ki-51이 있다.

2. 제원 [편집]

운용 국가
운용 집단
일본 제국 육군 항공대
제조사
개발 시기
1936년 5월
초도 비행 시기
1937년 2월 28일
생산 시기
1938년 1월
승무원 수
2명
전장
10.35 m
전폭
14.55 m
전고
3.645 m
주익 면적
30.58 m²
익면 하중
108.6 kg/m²
자체 중량
2,230 kg
최대 중량
3,320 kg
엔진
하5개(改)(Ha-5 Kai) 공랭식 엔진, 950마력
프로펠러
3엽 프로펠러
최대 속도
4,000 m에서 423 km/h
순항 속도
380 km/h
항속 거리
1,700 km
상승률
8.33 m/s, 5,000 m까지 10분 36초
실용 상승 한도
8,570 m
무장
주익에 7.7 mm 89식 고정기관총 1정
콕핏 후방 총좌에 7.7 mm 89식 선회기관총 1정
폭장
최대 400 kg
생산수
686~704대

3. 실전 [편집]

1942년 바탄 전선에서 주력으로 활동했다. Ki-30은 1938년 봄부터 제 2차 중일 전쟁에서 처음 투입되었다. 험지에서의 운용하기에도 무리가 없었고, 전투기의 호위가 붙는다면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성공사례로 인하여 Ki-30이 태평양 전쟁 초기 필리핀 전선에서 널리 운용되었다. 그러나 Ki-30 편대가 호위를 받지 못한 채로 연합국 전투기들과 교전하여 손실이 증가하자 곧 후방으로 배치되었다. 1942년 말, 대부분의 Ki-30이 훈련용으로 용도가 변경되었다. 전쟁 말기에는 대다수가 자살특공으로 소비되었다.

1940년 말, 왕립 태국 공군의 Ki-30이 1941년 1월 프랑스-타이 전쟁에서 투입되었다. 이후 1942년에 Ki-30을 추가적으로 일본에게서 양도받았다.

전후에는 국민당과 공산당 양쪽과 인도네시아에서 사용되었으며 공산당은 1950년 초 노획한 3대의 Ki-30을 훈련용으로 운용하였다.

4. 둘러보기 [편집]

[1] 타치카와사(Ki-29)와 나카지마사(Ki-31)는 계획 심사 단계에서 탈락했다.[2] Ki-30은 약 704대, Ki-32는 85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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