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자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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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晉)나라 16대 국군 소자후 小子侯 | |||
희(姬) | |||
진(晉) | |||
실전[1] | |||
아버지 | 진애후(晉哀侯) 희광(姬光) | ||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 기원전 705년 | |
재위 기간 | 음력 | 기원전 709년 ~ 기원전 705년 | |
1. 소개 [편집]
2. 생애 [편집]
진 소자후 원년(기원전 709년), 진 애후가 곡옥무공에게 살해당하여 진 소자후는 사람들의 추대로 진후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곡옥무공이 이끄는 곡옥은 날로 강성해갔다.
진 소자후 4년(기원전 705년), 사기에 의하면 진무공 즉 곡옥무공은 평화 협정을 하자는 핑계로 소자후를 유인했고, 끝내는 소자후를 살해해버렸다. 그리고 주환왕은 군사를 풀어서 곡옥무공을 치니 곡옥무공은 곡옥으로 퇴각했다. 주나라 측에서 진 애후의 아우인 희민을 진후로 임명하니 그가 바로 진후민(晉侯緡)이다. 춘추좌씨전에서는 사기와 같은 해에 진 무공에게 피살되었고, 주나라에서 희민을 진후로 세웠다고 기록해 기록이 사기보다 간략하다.
진 소자후 4년(기원전 705년), 사기에 의하면 진무공 즉 곡옥무공은 평화 협정을 하자는 핑계로 소자후를 유인했고, 끝내는 소자후를 살해해버렸다. 그리고 주환왕은 군사를 풀어서 곡옥무공을 치니 곡옥무공은 곡옥으로 퇴각했다. 주나라 측에서 진 애후의 아우인 희민을 진후로 임명하니 그가 바로 진후민(晉侯緡)이다. 춘추좌씨전에서는 사기와 같은 해에 진 무공에게 피살되었고, 주나라에서 희민을 진후로 세웠다고 기록해 기록이 사기보다 간략하다.
[1] 이름이 소자(小子)라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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