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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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견융 정벌과 서나라 정벌 [편집]
목왕은 소왕의 원정으로 국력이 쇠했기 때문에 그 국력을 회복하기 위해 인재 등용에 힘썼다. 백경(伯臩)을 태복에 임명했고, 경명(冏命)을 반포해 어느 정도 국력을 회복하였다.[2] 그리고 어느 정도 국력이 다시 강성해지자 주 목왕은 견융족을 정벌하고자 했다. 그러나 제공인 모보(謀父)가 내실을 다지자고 간했으나 목왕은 듣지 않았다.
목왕 12년[3] 봄, 견융족 토벌에 나섰으나 이득을 얻지 못했다.
당시 제후들이 화목하지 못했는데,[4] 죄 중에서 사안이 의심스러운 것에 대해서는 벌금을 부과하는 제도를 만들었는데, 보후가 제안했다해서 보형이라고 했다.[5]
서(徐)나라[6]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목왕은 그들을 토벌하였다.[7]
목왕 12년[3] 봄, 견융족 토벌에 나섰으나 이득을 얻지 못했다.
당시 제후들이 화목하지 못했는데,[4] 죄 중에서 사안이 의심스러운 것에 대해서는 벌금을 부과하는 제도를 만들었는데, 보후가 제안했다해서 보형이라고 했다.[5]
서(徐)나라[6]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목왕은 그들을 토벌하였다.[7]
3. 만년까지 [편집]
4. 여담 [편집]
전설에 따르면 그는 목왕 팔준이라는 8마리의 명마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1] 다만 나무위키 주나라 문서와 재위 기간이 다른 현상이 종종 발생하는데, 이것은 공화(共和) 시기 이전의 사료가 난리로 인해서 사료가 유실되어 일어난 현상이다. 최초의 기전체 사서인 사기에는 연대 고증을 할 수 없어서, 사마천이 포기를 하고, 연도도 나오지 않을 지경이니.....[2] 이 대목은 사기 주 본기의 주 목왕 대목을 참조해 만들었는데, 그 자세한 내용이 전하지 않았으나 당시 사회 모순에 대해 대처해 만든 것으로 짐작된다.[3] 연도가 불분명하니 그냥 이렇게 표기한다.[4] 이때부터 춘추시대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5] 사기에 나타난 최초의 벌금 기록이다.[6] 서나라는 후한 대의 서주 지역에 있는 나라다.[7] 단 이 때 망하지는 않았다. 춘추시대 때까지 서나라가 존속해있기 때문이다.[8] 주로 호탄에서 생산된다.[9] 사는 군대 단위로 여기서 사단이라는 부대 단위가 나왔다.[10] 이 행사는 매우 중요했는데, 이 회맹은 제후들의 단결을 다지는 의식이었다. 훗날 천자가 힘이 약해져 패자가 대신하게 된다. 이때만해도 천자의 권력은 강한 편이어서 천자 주도로 회맹이 가능했다.[11] 사구는 지금으로 치면 경찰 청장과 대법원장을 겸한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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