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민족청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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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족청년단
공식명칭
조선민족청년단(朝鮮民族靑年團)[1]
약칭
족청(族靑)
창당일
해산일
총재
단장
이념
의석 수
6석 / 200석
당 색
하늘색 (#4F7FD4)
목차
1. 개요2. 주요 인물3. 강령: 단지삼칙(團旨三則)4. 역대 선거 결과5. 관련 정치 단체6. 관련 문서7. 둘러보기

1. 개요 [편집]

1946년에 창단된 민족주의 성향 및 단지삼칙 강령에 창설된 청년단체며, 이범석을 중심으로 서울에서 조직되었다. 약칭으로 '족청'이라 한다.
사건 순서
대한청년단의 창단 과정
1
청년조선총동맹[2]
2
3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 참여하여 6명의 당선자를 냈으며 대한민국이 건국된 후 명칭도 '대한민족청년단'으로 변경했다. 1949년 1월에 대한청년단에 흡수, 통합되었다. 이후 대한청년단 내 족청계는 자유당 창당의 핵심세력이 되었으나, 그 수장인 이범석이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후 자유당에서 배제되었다.

2. 주요 인물 [편집]

최고의결기관으로 전국위원회를 두었고 전국위원회에서 선임된 이사들로 구성된 중앙이사회가 실질적인 운영을 맡았다. 그 밑에 각 단위의 지방위원회와 지방단부가 조직되었으며, 각 단에 총무부, 조직부, 선전부, 훈련부, 연구위원회, 훈련소를 두었다. 광복군 시절부터 이범석과 함께 활동해온 이들이 주축을 이루었다. 수원에 설치된 중앙훈련소의 소장도 이범석이 맡았으며 부소장도 송면수, 이준식, 안춘생 등 모두 광복군 출신들이 맡았다.
단장
부단장
조직부장
선전부장
송면수(宋冕秀)
훈련부장
안춘생(安椿生)

후에 이범석이 국무총리에 취임하면서 이범석은 총재가 되고, 이준식이 단장이 되었다.

참고자료

3. 강령: 단지삼칙(團旨三則) [편집]

① 우리는 민족정신을 환기하여 민족지상·국가지상의 이념하에 청년의 사명을 다할 것을 기한다.
② 우리는 종파를 초월하여 대내자립·대외공존의 정신으로 민족의 역량을 집결할 것을 기한다.
③ 우리는 현실을 직시하며 원대한 곳을 바라보고(着眼遠大), 비근한 것부터 착수하여(着手卑近) 건국도상의 청년다운 순감(純感)을 바칠 것을 기한다.

4. 역대 선거 결과 [편집]

5. 관련 정치 단체 [편집]

  • 청구회
  • 신정회

6. 관련 문서 [편집]

7. 둘러보기 [편집]

[1] 1948년 8월에 대한민족청년단으로 개칭[2] 대한민주청년동맹의 후신으로 비밀결사인 백의사의 대외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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