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청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전남도청에서 넘어옴
도청 소재지 | ||
국가 | ||
관할구역 | ||
직원 수 | 1261명[1] | |
예산 | 6조 7508억 2418만원(2018) | |
도지사 | ||
부지사 | ||
홈페이지 | ||
SNS | ||
1. 개요 [편집]
2. 역사 [편집]
파일:전남도청 1896.jpg
1895년 야심차게 추진했던 23부제가 여러 문제점을 안고 기존의 8도를 보완한 13도제가 시행 결과 1896년 기존의 전라도가 남·북으로 분도되었고 이 결과 전라남도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전까지의 도청(도관찰부)은 전라도의 "라"를 맡을 정도로 조선시대 당시에는 호남의 중심도시 포지션을 가지던 나주에 위치하였으나, 도제로 원복 할 당시 광주로 이전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도청을 품게 된 광주가 호남의 새로운 중심지로 떠오르게 된다.
이 때 당시의 청사는 현재 국립아시아문화전당으로 쓰이는 광산동 청사 맞은편 전일빌딩 자리에 있던 광주관아 건물을 사용하였으나, 한일합방을 거치며 대한제국 시절 지금의 세무서격의 사무를 보던 광주재무감독국이 폐지됨에 따라 전남도청 또한 주인을 잃고 비어버리게 된 이 신식 목조건물에얼씨구나하며 입주하게 되었다.
파일:전남도청1910.jpg
참고로 이 건물은 현재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자리, 즉 광산동에 위치하였다. 다시 말해 이때부터 전남도청의 광산동 시대가 개막하게 되었던 것.
여담으로, 1896년 전남도청이라고 설명했던 위위의 사진 또한 전남도청이 광산동으로 이전한 후, 전남도경찰부가 사용할 당시인 1910년대에 촬영된 사진이다.
허나, 1930년대가 되며 전남도청 역시 이 당시 경성부청, 부산부청, 인천부청 등이 겪던 청사 협소 문제를 겪게 되었고, 이에 1910년대부터 사용하던 구 재무감독국 건물을 헐고 그 자리에 새로운 청사를 짓게 되었는데, 이 청사가 바로 광주시민 및 전남도민들에게 구 도청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를 아시아문화전당 건물이다.
1895년 야심차게 추진했던 23부제가 여러 문제점을 안고 기존의 8도를 보완한 13도제가 시행 결과 1896년 기존의 전라도가 남·북으로 분도되었고 이 결과 전라남도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전까지의 도청(도관찰부)은 전라도의 "라"를 맡을 정도로 조선시대 당시에는 호남의 중심도시 포지션을 가지던 나주에 위치하였으나, 도제로 원복 할 당시 광주로 이전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도청을 품게 된 광주가 호남의 새로운 중심지로 떠오르게 된다.
이 때 당시의 청사는 현재 국립아시아문화전당으로 쓰이는 광산동 청사 맞은편 전일빌딩 자리에 있던 광주관아 건물을 사용하였으나, 한일합방을 거치며 대한제국 시절 지금의 세무서격의 사무를 보던 광주재무감독국이 폐지됨에 따라 전남도청 또한 주인을 잃고 비어버리게 된 이 신식 목조건물에
파일:전남도청1910.jpg
참고로 이 건물은 현재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자리, 즉 광산동에 위치하였다. 다시 말해 이때부터 전남도청의 광산동 시대가 개막하게 되었던 것.
여담으로, 1896년 전남도청이라고 설명했던 위위의 사진 또한 전남도청이 광산동으로 이전한 후, 전남도경찰부가 사용할 당시인 1910년대에 촬영된 사진이다.
허나, 1930년대가 되며 전남도청 역시 이 당시 경성부청, 부산부청, 인천부청 등이 겪던 청사 협소 문제를 겪게 되었고, 이에 1910년대부터 사용하던 구 재무감독국 건물을 헐고 그 자리에 새로운 청사를 짓게 되었는데, 이 청사가 바로 광주시민 및 전남도민들에게 구 도청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를 아시아문화전당 건물이다.
1930년대의 전남도청 |
흔히 구 전남도청은 5.18 관련 영화나 도청 이전 이전의 사진자료, 직접 봤던 시민·도민들의 기억 속에서는 하얀 건물이고, 현재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또한 흰색이나 신축 당시에는 적벽돌과 화강암이 조화를 이루는 외관이였으며, 2층의 본관 건물과 이전 직전까지 민원실로 쓰이던 도청 회의실 건물만이 있었다. 흰색 도료로 칠해진 것은 해방 후 미군정 시기였으며, 본관 3층 증축과 별관 건설은 1975년의 일이였다. 여담으로 미군정 시기 흰색 페인트칠을 한 것이 일각에선 백악관을 흉내(...)내려 한 것이란 소문이 돌기도 하나 그것보단 지어진지 20년이 다 되어가며 건물노화로 곳곳에서 벽돌가루가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였다는 쪽이 더 설득력이 있다.
1946년의 전남도청 |
한편, 이 당시의 전남도청 앞은 지금의 풍경과는 달랐는데, 아직 금남로 확장공사 이전이라 도청 앞 분수대와 로터리가 아직 없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으며, 이 사진에서 유독 눈에 띄는 고풍스러운 건물은 한때 전라남도지사의 관사로 쓰이기도 했던 무덕전이다.
이후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치며, 금남로 확장 및 도청 증축공사가 끝나며 이전 직전까지의 모습과 완전히 같아지게 되었으며, 이 당시 금남로 확장공사와 도청 증축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자축하는 행사가 열리기도 하였으나 도청 증축으로부터 5년후인 1980년, 전라남도 뿐 아니라 대한민국 역사에 중요한 장소로 떠오르게 되는데 바로 5.18 당시 계엄군이 비무장 시민을 향해 집단발포를 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였고, 이로 말미암아 광주 전역이 시민군과 계엄군의 치열한 전투의 현장이 되었고, 그 중에서도 바로 이 도청이 5월 27일 계엄군에게 최종적으로 진압 될 당시까지 시민군이 마지막 거점으로 삼아 최후의 저항을 펼치던 곳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현재도 곳곳에 탄흔이 남아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때문에 남악리 이전 후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입주하는 과정에서 이 중요한 사적을 일부 헐겠다고 했을때 관련 단체들의 반발이 매우 심했으나, 원만히 해결 된 후 리모델링을 거쳐 현재 국립아시아문화전당으로 쓰이고 있다. 이후의 역사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서에서 확인가능하다.
2.1. 역대 도지사 [편집]
초대 | 2대 | 3대 | 4대 | 5대 |
박철수 | 이을식 | 추규영 | 민병기 | |
1948.10.18 ~ 1950.4.21 | 1950.5.1 ~ 1951.12.16 | 1951.12.17 ~ 1953.11.22 | 1953.11.23 ~ 1955.2.24 | 1955.2.25~1956.9.23 |
6대 | 7대 | 8대 | 9대 | 10대 |
최의남 | ||||
1956.9.24~1959.5.12 | 1959.5.13~1959.8.10 | 1959.8.11~1960.4.30 | 1960.5.12~1960.10.6 | 1960.10.7~1960.12.30 |
관선(이승만 정부) | 관선(허정 과도정부) | 관선(장면 내각) | ||
11대 | 12대 | 13대 | 14대 | 15대 |
송호림 | 김용관 | |||
1960.12.31~1961.5.23 | 1961.5.24~1963.7.22 | 1963.7.23 ~1963.12.18 | 1963.12.19~1966.1.28 | 1966.1.29 ~1969.10.21 |
관선(국가재건최고회의) | 관선(박정희 정부) | |||
16대 | 17대 | 18대 | 19대 | 20대 |
장형태 | ||||
1969.10.25 ~ 1973.9.25 | 1973.9.26 ~ 1975.11.12 | 1975.11.13 ~ 1979.1.9 | 1979.1.10 ~ 1980.5.27 | 1980.5.28 ~ 1982.1.4 |
관선(박정희 정부) | 관선(최규하 정부) | |||
21대 | 22대 | 23대 | 24대 | 25대 |
문창수 | ||||
1982.1.5 ~ 1984.10.9 | 1984.10.10 ~ 1988.2.25 | 1988.2.29 ~ 1988.10.3 | 1988.10.04 ~ 1990.06.20 | 1990.6.21 ~ 1991.2.18 |
관선(전두환 정부) | 관선(노태우 정부) | |||
26대 | 27대 | 28대 | 29대 | 30대 |
백형조 | 조규하 | |||
1991.2.19 ~ 1992.4.20 | 1992.4.21 ~ 1993.3.3 | 1993.03.04 ~ 1993.12.27 | 1993.12.28 ~ 1994.9.23 | 1994.9.24 ~ 1995.6.30 |
관선(노태우 정부) | 관선(김영삼 정부) | |||
31~32대 | 33대 | 34~36대 | 37대 | 38대 |
1995.7.1 ~ 2002.6.30 | 2002.7.1 ~ 2004.4.29 | 2004.6.6 ~ 2014.06.30 | 2014.7.1 ~ 2017.5.12 | 2018.7.1 ~ |
3. 조직 [편집]
- 비서실
- 대변인
- 도민행복소통실
- 행정부지사
- 감사관
- 인구청년정책관
- 여성가족정책관
- 국제협력관
- 정무부지사
- 기업도시담당관
- 기획조정실
- 정책기획관
- 예산담당관
- 법무담당관
- 스마트정보담당관
- 도민안전실
- 안전정책과
- 사회재난과
- 자연재난과
- 일자리정책본부
- 일자리정책과
- 사회적경제과
- 투자유치과
- 경제에너지국
- 혁신경제과
- 신성장산업과
- 연구바이오산업과
- 중소벤처기업과
- 에너지신산업과
- 관광문화체육국
- 관광과
- 문화예술과
- 문화자원과
- 스포츠산업과
- 전국체전기획단
- 보건복지국
- 사회복지과
- 노인복지과
- 장애인복지과
- 건강증진과
- 식품의약과
- 농축산식품국
- 농업정책과
- 친환경농업과
- 식량원예과
- 농식품유통과
- 축산정책과
- 동물방역과
- 해양수산국
- 해운항만과
- 섬해양정책과
- 수산자원과
- 수산유통가공과
- 건설교통국
- 지역계획과
- 도로교통과
- 건축개발과
- 토지관리과
- 자치행정국
- 총무과
- 자치행정과
- 희망인재육성과
- 세정과
- 회계과
- 한전공대설립지원단
- 지원담당관
- 동부지역본부(환경산림국)
- 운영지원과
- 기후생태과
- 물환경과
- 환경관리과
- 산림보전과
- 산림휴양과
- 전남소방본부
- 소방행정과
- 대응예방과
- 구조구급과
- 소방감사담당관
- 소방교육과
- 119종합상황실
3.1. 직속기관 [편집]
- 농업기술원
- 전남지방공무원교육원
- 보건환경연구원
- 전남도 소재 소방서
3.2. 사업본부/사업소 [편집]
- 해양수산과학원
- 산림자원연구소
- 동물위생시험소
- 도로관리사업소
- 농업박물관
- 중앙협력본부
- 혁신도시지원단
- 전남도립도서관
- 전라남도종자관리소
- 전남도립미술관
3.3. 휘하 시/군청 [편집]
4. 이용가능한 대중교통 [편집]
4.1. 버스 [편집]
4.2. 철도 [편집]
5. 여담 [편집]
[1] 국가직 공무원 제외[2] 정확히는 남악신도시 밖에 있다.(...) 도청이전부지 개발과 동시에 배후지역 개발을 위해 남악신도시를 기획한 것일 뿐이지 도청을 이전하기 위해서 개발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류상으로만 따로 되었을 뿐 실제로는 둘 사이의 구분을 전혀 느낄 수 없다. 굳이 엄밀히 따지자면 도청이 위치한 곳은 무안군 삼향읍이다.[3] 무안군과 도봉구는 자매결연 관계. 참고로 도봉구청은 2003년 11월 17일에 이전과 동시에 업무가 시작됐다.[4] 1952년 지방선거 이후로도 도지사 및 특별시장은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게 되어있었기 때문에 최초의 민선도지사는 서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1960년 지방선거 후에야 취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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