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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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제5대 황제 睿宗 興皇帝 | 예종 흥황제 | |
예종(睿宗) | |
현진대성대흥효황제(玄眞大聖大興孝皇帝) | |
문명(文明, 684년 2월 ~ 684년 8월) 광택(光宅, 684년 9월 ~ 684년 12월) 수공(垂拱, 685년 ~ 688년) 영창(永昌, 689년 1월 ~ 689년 11월) 재초(載初, 689년 11월 ~ 690년 8월) 경운(景雲, 710년 7월 ~ 712년 1월) 태극(太極, 712년 1월 ~ 712년 4월) 연화(延和, 712년 5월~ 712년 8월) | |
출생 | |
사망 | |
교릉(橋陵) | |
재위 | 당의 황제 (1차) |
당의 황제 (2차) | |
당의 태상황 | |
712년 9월 8일 ~ 716년 7월 13일 | |
1. 소개 [편집]
2. 즉위 이전 [편집]
예종은 662년에 태어났으며 이때 초명은 이욱륜(李旭輪)이었고, 은왕(殷王)으로 책봉되었다. 666년에는 작위가 예왕(豫王)이 되었고 669년에는 기왕(冀王)으로 변경되었으며 이때 이름을 륜(輪)으로 고친다. 676년에는 상왕(相王)으로 작위가 변경되었고 우위대장군(右衛大將軍)으로 임명된다. 678년에는 낙주목으로 임명되고 예왕(預王)의 작위를 받았으며, 이때 이름을 단(旦)으로 바꿨다. 이후 683년에는 고종이 세상을 떠나고, 형인 이현이 당중종으로 즉위하였다.
3. 황제 즉위 [편집]
4. 재즉위, 태상황 [편집]
5. 여담 [편집]
어머니 측천무후의 꼭두각시 수준에, 무후가 죽은 뒤에는 잘못하면 목 날아가기 딱 좋은 위치에 있었던 사람이지만, 아들을 잘 둔 덕분에 말년은 편하게 지냈다. 이름이 이단(李旦)인데,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한 뒤에 왕에 즉위할 때 개명했던 이름과 똑같다.
예종은 6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장남인 이성기는 현종이 즉위하고 741년까지 살다가 세상을 떠나 양황제(讓皇帝)로 추존되었다. 차남인 이성의는 혜장태자로 추존되었고, 넷째 아들인 이융범은 혜문태자로 추존되었고, 다섯째 아들인 이융업은 혜선태자로 추존되었다. 막내아들인 이융제는 예종의 아들들 중에서는 일찍 세상을 떠난 편이다.
예종은 6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장남인 이성기는 현종이 즉위하고 741년까지 살다가 세상을 떠나 양황제(讓皇帝)로 추존되었다. 차남인 이성의는 혜장태자로 추존되었고, 넷째 아들인 이융범은 혜문태자로 추존되었고, 다섯째 아들인 이융업은 혜선태자로 추존되었다. 막내아들인 이융제는 예종의 아들들 중에서는 일찍 세상을 떠난 편이다.
6. 둘러보기(계보) [편집]
[1] 황사가 된 예종의 삶은 그다지 평온하지 못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무측천이 총애하는 여자 노비 위단아(韋團兒)가 이 우울해하는 황사를 마음에 들어해 사사로운 정분을 나누려 했다.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던 예종은 훗날 화가 될까 걱정해 그녀의 접근을 거절했다. 이로 인해 예종은 단아에게 미움을 사게 되었고 그녀는 곧 예종의 비인 유씨와 덕비 두씨(현종의 생모)가 거주하는 곳에 나무인형을 몰래 묻어 두었다가 그들이 요법을 부려 무측천을 저주한다는 고발을 했다. 장수 2년(693)년 정월 2일 유씨와 두씨는 무측천을 알현하기 위해 입궁했다가 가예전(嘉豫殿)에서 죽임을 당했다. 이들은 궁궐 안의 비밀 장소에 묻히게 되었고 이후 아무도 이들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이들의 매장지는 이후에도 밝혀지지 않아 훗날 예종이 다시 황위에 오른 후에도 그저 혼을 부르는 의식을 거행한 후 장례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두 부인이 돌연 실종되었지만 예종은 감히 무측천에게 물어보지도 못하고 그녀 앞에서 그저 아무 일도 없었던 마냥 태연한 척 할 뿐이었다. 임사영 <황제들의 당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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